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고(故) 레너드 코페트가 자신의 저서 ‘야구란 무엇인가’에서 묘사한 심판의 모습이다. 이 책은 1967년에 처음 출간됐다. 52년 전에도 심판은 선수와 팬들 모두로부터 공격받는 ‘공공의 적’이었던 셈이다.
앞으론 반세기 넘게 지속된 심판에 대한 이런 평판도 달라질지 모르겠다. 며칠 전 야구의 미래를 바꿀 소식이 들려왔기 때문이다.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심판협회가 ‘자동 볼-스트라이크 시스템(Automated ball-strike system)’ 개발과 실험에 함께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이르면 5년 안에 인공지능(AI)을 장착한 로봇 심판이 메이저리그에 도입된다.
메이저리그 사무국은 이미 올해 독립리그 애틀랜틱리그에서 로봇 심판을 테스트했다. 내년 마이너리그 싱글A를 시작으로 상위 리그로 점차 적용 범위를 확대할 방침. 시기의 문제일 뿐 ‘로봇 심판’의 도입은 기정사실에 가깝다. KBO리그 역시 로봇 심판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팬들은 압도적으로 ‘로봇’을 응원한다. 대다수의 팬들은 ‘로봇 심판’의 공정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로봇의 가장 큰 장점은 ‘일관성’이다. 내가 응원하는 팀이건 상대 팀이건 스트라이크 존은 항상 일정할 것이다. ‘이승엽 존’, ‘송진우 존’ 등으로 불렸던 특정 스타플레이어들에 대한 관대한 판정도 사라지게 된다. 억울한 볼 판정도 없어지게 된다.
모든 선수들이 나이와 연차, 팀에 관계없이 공평하게 경쟁한다.
하지만 모든 게 장밋빛인 것은 아니다. 포수의 주요 자질 중 하나인 프레이밍(스트라이크처럼 보이게 공을 잡는 것)은 그 빛을 잃어갈 것이다. 포수가 공을 놓치건, 어설프게 잡건 AI가 설정한 스트라이크 존만 통과하면 그 공은 스트라이크가 된다. 올 시즌 테스트에서도 원바운드에 가까운 공이 스트라이크 콜을 받기도 했다. 로봇에 항의하다 퇴장당하는 선수도 나왔다. 겉으로는 인간이 로봇에 밀리는 모양새다.
드라마가 더 재미있으려면 악역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미래의 야구에서 심판은 더 이상 ‘악당’이 아니다. 언제나 좋은 핑곗거리가 되었던 ‘공공의 적’이 사라진 야구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이헌재 스포츠부 차장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