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11월 김정은(왼쪽)과 나란히 앉아 공훈국가합창단의 공연을 관람하는 김원홍 국가보위상. 나는 새도 떨어뜨리는 힘을 가졌던 김원홍도 끝내 형장의 이슬이 됐다. 동아일보DB
주성하 기자
그는 김정은 체제가 막 첫걸음을 떼던 2012년 4월 국가보위부장으로 임명돼 2017년 1월 해임될 때까지 장성택 노동당 행정부장을 비롯한 수많은 고위 간부 처형에 앞장섰다. 김원홍이 2003∼2010년 사이 북한군 보위사령관(한국 기무사령관과 비슷함)으로 있었다는 점까지 감안하면 그의 손에 처형당한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런 저승사자도 토사구팽의 운명은 피하지 못했다. 어쩌면 예고된 결말이기도 하다. 1973년 국가보위부 창설 이래 이 죽음의 부서 수장들은 모두 자살이나 처형,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
김원홍의 몰락을 불러온 결정적 계기는 2017년 1월 말 강기섭 민용항공총국 총국장을 죽게 만든 사건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정은이 노동당 후보위원에 불과한 강기섭의 빈소를 찾아가 눈물을 흘리며 시신을 쓰다듬는 장면이 북한 언론에 소개되기도 했다.
강기섭이 잘나가자 김원홍은 뒷조사를 시작했다. 비리가 많으니 직접 조사하겠다고 김정은의 승낙도 받았다. 그런데 조사 과정에서 받은 혹독한 고문에 강기섭이 그만 쓰러졌고, 이송된 병원에서 의식도 차리지 못한 채 죽었다. 강기섭이 입을 열지 않고 죽다 보니 김원홍은 무고한 사람을 죽인 셈이 됐다. 김정은은 격노했다. 김원홍은 그때까지 칼잡이로서 결단력을 인정받았다. 하지만 김정은의 신임만 믿고 사람들을 무작정 잡아다 심한 고문을 일삼다 보니 원성이 자자했다. 사실 깨끗한 간부도 없거니와, 보위부 조사실에서 거꾸로 매달려 전기고문을 받다 보면 안 한 짓도 했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분노에 찬 김정은은 용도 폐기 결정을 내렸고, 김원홍을 곧바로 해임했다. 보위성엔 집중 검열이 시작됐고, 그 결과 조직부 간부 3명이 처형됐다. 김원홍은 몇 달 조사를 받고 북한군 총정치국 보위사령부 담당 과장으로 좌천됐다가 2년 뒤 처형됐다. 요즘 김정은은 현직에서 바로 죽이지 않는다. 쩍하면 죽인다는 해외 여론을 의식해서다. 그 대신 언론의 주목에서 사라지길 기다렸다 처형한다. 김원홍은 미국에 핵 정보를 넘긴 혐의를 받다 처형됐다. 터무니없는 죄명이었다.
김원홍의 가족도 동반 몰락했다. ‘철’이란 외자 이름으로 알려진 김원홍의 아들은 한때 해외에서 김정남 다음으로 돈을 흥청망청 쓰던 인물이었다. 그는 통일전선부 산하의 해외출장소 책임자로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에서 근무하며 마약, 위조화폐 밀매 등 온갖 불법을 저질렀다. 현지 경찰에도 여러 차례 체포됐는데, 그때마다 보위성 해외 파견 요원들이 총동원돼 구출해냈다. 뇌물로 꺼내지 못하면 인질극까지 벌여 맞교환하기도 했다. 나중엔 현지 경찰이 “붙들어 봐야 또 풀려날 놈”이라며 체포할 생각조차 하지 않을 정도였다.
대다수 북한 고위간부나 그 자식들과 마찬가지로 김철도 마약중독자였는데, 중독 상태가 심각한 수준이었다. 아버지가 해임돼 조사를 받을 때 김철은 심장발작을 일으켜 죽을 뻔하기도 했다. 아버지가 처형됐으니 마약중독자 아들의 결말도 뻔했다.
주성하 기자 zsh7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