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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산 써라” 독촉에 월급날까지 앞당긴 지자체

입력 | 2019-12-26 03:00:00

정부 “재정을 경기회복 마중물로”
예산 남기면 불이익 준다며 압박… 집행률 산정일 맞춰 지출 고육책




인천의 일부 자치구는 원래 월급날이 20일이지만 이달에는 이례적으로 나흘 앞당겨 16일 월급을 지급했다. 최근 인천시가 예산 집행 실적이 부진한 기초지방자치단체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경고하자 일부 구가 재정을 많이 쓴 것처럼 보이려고 예산 집행률 산정 시점인 16일에 월급을 미리 준 것이다.

경북도교육청은 20일 403억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을 확정했다. 관내 학교 사물함과 책걸상 등을 바꾸는 사업이 대거 포함됐다. 교육청 관계자는 “사용 연한이 다 된 기자재를 바꾸는 것”이라면서도 “예산 집행률을 높이기 위해 돈을 바로 쓸 수 있는 사업 위주로 추경을 편성했다”고 했다. 돈이 부족해서 추경을 짠 게 아니라 돈을 쓰려고 짠 것이다.

정부가 연말까지 재정 집행률을 최대한 끌어올리라고 독촉하자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들이 ‘돈 쓰기 총력전’을 펴고 있다. 10월 문재인 대통령이 “올해 예산 이월, 불용 예산을 줄이고 지자체도 최대한 협조해 달라”고 한 뒤 중앙 부처들의 지방에 대한 ‘실적 압박’이 거세진 것이다. 기획재정부와 행정안전부가 각종 회의를 통해 수시로 실태를 점검하는 데다 여당까지 합세해 예산 집행을 압박하고 나섰다. 행안부는 2021년도 예산 배정 때 올해 예산 불용 및 이월액이 많은 지자체에 불이익을 주는 반면 예산을 많이 쓴 지자체에 인센티브를 주는 쪽으로 시행규칙까지 개정했다.

지자체와 교육청들은 재정을 마중물 삼아 경기를 살리려는 취지에 공감하면서도 정해진 절차와 기준을 무시하고 무작정 돈을 쓸 수는 없다며 곤혹스러워하고 있다. 서울의 한 자치구 예산 담당자는 “시에서 하라니까 어떻게든 예산이 남지 않도록 노력은 하는데 바람직한 재정 운용인지 의문”이라고 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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