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지자체에 “예산 써라” 독촉
최근 지방자치단체와 시도교육청은 남는 예산을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가 연말 결산 때 예산 불용액과 이월액이 많은 곳에 불이익을 주겠다고 공언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는 주기적으로 재정 집행률을 점검하고, 행정안전부는 공사 선금 지급 한도를 최대 70%에서 80%로 늘리고 공사 진척도에 따라 공사비를 미리 계산해 주는 기성금 지급을 활성화하고 있다. 예산 신속 집행 요령을 담은 공문까지 내려보낼 정도다.
25일 기재부에 따르면 9월 말 집행률 63.1%였던 지방재정 집행률은 11월 말 77.1%로 올랐다. 같은 기간 지방교육재정도 71.9%에서 83.3%로 뛰었다. 하지만 기재부가 정한 목표치에는 여전히 못 미친다. 기재부는 연말까지 지방재정 90% 이상, 지방교육재정 91.5% 이상 집행을 목표로 잡고 있다.
제주도교육청은 지난달부터 한시적으로 물품 구매 수의계약 기준을 1000만 원 이하에서 2000만 원 이하로 완화했다. 도교육청 관계자는 “수의계약제를 더 투명하게 운영하려 엄격한 자체 기준을 적용했던 건데 빠른 예산 집행을 위해 다시 기준을 풀었다”고 했다.
예산을 빨리 쓰라고 독촉하는 데 세금을 쓰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 행안부는 연말에 예산 집행률이 높은 지자체에 총 100억 원의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앞서 올 상반기(1∼6월)와 11월 기준으로도 각각 30억 원, 50억 원의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지자체들은 시군구를 대상으로 자체 인센티브를 걸고 있다. 강원도는 연말에 우수 지자체에 총 22억 원의 인센티브를 줄 계획이다.
일부 지자체 관계자들은 재정 집행 독려에 따른 스트레스가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한 광역지자체 예산 담당자는 “10월 대통령의 재정 집행 독려 발언 이후 약 두 달간 기재부와 행안부 주재로 회의가 30∼40차례 열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며 “정작 집행률 제고 방안을 생각할 겨를도 없다”고 토로했다. 다른 광역지자체 담당자도 “공사 선금이나 기성금은 공사업체가 원하지 않으면 줄 수 없는데 제출 서류가 많아 꺼리는 업체가 대부분”이라며 “공사기간을 줄여 부실 공사를 할 수도 없고 개별 사정을 고려하지 않는 일방 행정에 답답하다”고 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예산 집행 독려가 경기에 도움을 주는 효과는 있겠지만 지금처럼 무리하게 자금을 집행하면 예산이 엉뚱하게 쓰일 가능성도 크다”며 “빨리 쓰기보다 재정을 제대로 쓰는 데 더 신경 써야 한다”고 했다.
세종=주애진 기자 ja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