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레이션 김충민 기자 kcm0514@donga.com
이즈미 지하루 일본 출신 서경대 국제비즈니스어학부 교수
그런 야경을 만끽하며 가벼운 운동을 겸해 오늘 밤에도 혼자 성곽을 따라 걸었다. 혜화문에서 흥인지문까지. 이 코스는 밤에도 사람들이 많이 다니고 낙산이 그리 높지 않아서 겨울에도 다니기에 무난하다. 성벽 안팎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여서 낙산에 다다르면 더욱 눈이 즐겁다. 멀리 인왕산과 북악산 위를 지나가는 성벽의 빛도 보여, 머릿속에 옛 한양의 지도를 그려 본다.
오늘은 2019년도 얼마 남지 않아 일 년을 돌이켜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어둡고 아픈 사건도 많았지만 한양도성에 얽힌 즐거웠던 시간, 기억들이 생각났다. 지난 학기에 담당한 과목 ‘관광일어’ 시간의 야외 실습도 즐거웠던 작업이었다. 서울의 역사가 담긴 문화관광콘텐츠를 찾아 외국인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곳을 한국과 중국 학생들이 연구하고 직접 현장에 가 본 수업이었다. 북한산 밑에 위치하는 우리 학교에서 1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성북구와 종로구를 중심으로 윤동주 문학관, 최순우 옛집, 한양도성 혜화동 전시·안내센터, 청계천의 광통교, 공간건축 옛 사옥, 원서동, 북촌 등을 선정했고 한양도성 길을 걸어 보고 사소문 중엔 창의문과 혜화문을 걸어가며 직접 살피고 여러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오늘 낙산에서 내려와 동대문에 다다르니 성탄절과 연말을 맞이해서일까? 빛의 축제가 펼쳐지고 있었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서울 빛 축제 ‘서울라이트(SEOUL LIGHT)’ 행사가 내년 1월 3일까지 열린다고 한다. 이곳에서 나는 동대문의 일상과 거리를 느끼는 이색적인 체험을 했다.
동대문은 흥인지문(동대문)과 성곽 안팎에 자연스레 형성된 상업지역이고, DDP는 운동장과 경기장으로 랜드마크가 됐던 역사가 있는 곳에 지어진, 앞으로 시간이 채워지고 쌓일 건축물이다. 또한 이라크 출신 영국 건축가인 자하 하디드가 설계하여 2014년에 완공됐는데, 2016년 그녀가 사망함으로써 이미 역사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그 모양은 전체와 부분이 모두 유기적으로 연속성을 지니며 흐르는 듯한 곡선의 모양새를 이루고 있다.
이번 축제에 상영되는 미디어파사드 작품은 총 16분짜리 영상으로 하루 네 번 DDP 외벽에 펼쳐진다. 200m에 걸친 곡선 전면부에 빛과 영상의 쇼가 펼쳐지는데, 이는 인공지능(AI)이 기계학습으로 조합한 것으로 과거 동대문의 역사, 현재 사람들의 이야기를 미래 서울의 꿈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는 시점에서 어두운 서울의 밤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한양도성의 빛, 빠르고 화려하게 선보이는 서울라이트의 빛들은 우리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생각의 깊이를 더해주고 있다. 이들이 우리 모두에게 서울의 미래를 비추는 희망의 빛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