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사랑을 하고
서로 다른 가을을 보내고서로 다른 아프리카를 생각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드디어 외로운 노후를 맞고
드디어 이유 없이 가난해지고
드디어 사소한 운명을 수긍했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었다
그가 결연히 뒤돌아서자
그녀는 우연히 같은 리듬으로 춤을
그리고 당신은 생각나지 않는 음악을
찾아 바다로
(…중략…)
성탄절에는 뜨거운 여름이 끝날 거야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사랑을 했다
외롭고 달콤하고 또 긴 사랑을
그건 뭘까. 선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핫바지’가 되는 게 아니라 ‘핫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기적. 억울해도 착하게 살면 예쁜 미소를 지닌 중년이 될 수 있다는 확인. 성실했던 지난날은 우리를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 권선징악이란 전설 속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양준일이라는 사람 안에 있었다. 이 드문 현상을 목마르게 기다렸던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희망 자체를 응원하고 있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한마음으로 희망하는 이 현상을 보면서 이 시를 읽는다. 이 작품은 서로 다른 삶을 살던 사람들이 한데 모여 즐기는 모습을 담았다. “우리는 여러 세계에서 모여들어 여전히 사랑을 했다”는 말이 우리 사회의 가장 아름다운 단면을 보여주는 듯 즐겁다. “걱정 마. 모든 것은 완벽해질 테니까.” 언젠가 깨고 말 꿈이라고 해도 우리는 이 희망에 사로잡히고 싶다. 그것만으로도 완벽한 연말이 될 테니까.
나민애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