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샤론 매과이어의 ‘브리짓 존스의 일기’
이정향 영화감독
런던의 출판사에 다니는 32세 노처녀 브리짓 존스는 고향 집에서 매년 여는 신년 파티가 고역이다. 엄마의 성화 때문에 취향도 아닌 남자들을 소개받는 것에도 지쳤다. 하지만 소꿉친구 마크가 의외로 멋진 남자가 되어 귀향했고 브리짓은 설레기까지 하는데 마크는 그녀의 겉모습만 보고 단칼에 거절한다. 시작도 하기 전에 차인 터라 상처랄 것도 없는 브리짓은 그 뒤 바람둥이 상사의 유혹에 넘어가 결혼까지 꿈꾸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는다. 우여곡절 끝에 그녀의 가치를 깨달은 마크와 눈 내리는 겨울 밤 로맨틱하게 맺어진다는 아주 익숙한 전개이지만, 여주인공이 외모도 성격도 무척 평범하다는 점이 이 영화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우리 때 32세는 주변의 성화가 극에 달하는 나이였다. 나도 그랬다. 다행히 34세에 백수 생활을 끝내고 데뷔를 하자 드디어 호적을 파내 시집을 갈 거라고 온 집안이 신이 났다. 그런데 간혹 들어오던 중매 자리가 딱 끊겼고, 뒤이어 울 엄마의 시집 타령도 중단됐다. “나도 영화감독 며느리는 싫을 것 같아. 드세 보여서.”
왜 사랑 영화의 해피엔딩은 하필 늦가을 낙엽 더미나 칼바람 속 함박눈을 배경으로 이루어질까? 추위와 허전함은 비례하기에? 예쁘지도, 애써 꾸미지도 않는 브리짓이 안 꾸며도 멋진 마크로부터 받은 사랑 고백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해”의 유효 기간은 얼마짜리일까? 이런 깨는 소리를 하는 내게 친구들은 그러니 아직도 19금 영화를 못 만드는 거라며 막내 나무라듯 혀를 찬다. 하지만 결혼을 못 한 만큼 결혼에 대한 생각은 많은 나다. 왜 인류는 갈수록 허약해지는가. 평균수명은 늘었지만 유전자가 온실 속의 화초 같다. 결혼 상대를 본능에 따른 느낌보다 학벌, 직업, 재력으로 골라서일 듯싶다. 조건이 꽝이라도 왠지 끌리는 상대가 있다. 이 느낌을 외면하지 말자. 조합이 좋은 유전자끼리가 우성인자를 남기니 이런 짝짓기면 인류가 더 튼튼해지지 않을까 하는 잔소리를 사방에 해 왔지만 다들 요령 좋게 짝을 찾고 나만 남았다. 캐럴 소리가 구슬프다. 다음 생은 괜찮겠지, 뭐.
이정향 영화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