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서울변회, “해외 파견-공공기관 채용 지원… 청년변호사에 다양한 기회 주겠다”

입력 | 2019-12-30 03:00:00

취임 1년 맞은 박종우 서울변회 회장



3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박종우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이 취임 1년을 돌아보며 소회와 각오를 밝히고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변호사시험을 갓 합격한 변호사가 바로 개업하는 건 상상하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청년 변호사들이 자리를 잡고 능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돕고 싶습니다.”

23일 서울 서초구 서울변호사회관에서 만난 서울지방변호사회 박종우 회장(45·사법연수원 33기)은 취임 이후 최우선 화두로 ‘청년’을 내세운 이유에 대해 이같이 답했다. 올 1월 전국 최대 규모 변호사회인 서울변회 제95대 회장으로 당선된 그는 이제 임기의 절반을 보냈다. 임기 내내 그의 정책은 ‘청년’ ‘공익’ ‘복지’를 향했다.

○ 청년의 길을 찾는 서울변회

올해로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가 2만 명을 돌파했다. 전국 변호사 수는 3만 명을 넘어섰다. 박 회장은 급격히 늘어가는 변호사 수만큼이나 이제 막 변호사가 된 청년들의 현실은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박 회장은 “젊은 변호사들이 어렵게 개업을 하더라도 사무실과 직원 없이 자택을 사무소로 등록하고 일하는 경우가 많다”며 “젊은 변호사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제공하는 게 변호사회의 의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서울변회는 내년부터 ‘청년변호사 해외 교환 프로그램’을 실시한다. 경력 5년 이하의 청년 변호사들을 해외 로펌에 파견해 일정 기간 근무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이다. 반대로 해당 국가의 청년 변호사들은 우리나라 로펌에서 일할 기회를 얻는다. 내년 상반기 중에 지원자를 받아 시행할 예정이다.

서울변회는 해외 근무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항공료와 일정 실비도 청년 변호사들에게 지원할 계획이다. 올해 서울에서 있었던 ‘세계변호사총회’ 기간 홍콩과 싱가포르 변호사회와 업무협약을 체결해 한국 청년 변호사들의 해외 진출 기회는 더 커졌다. 내년에는 미국 뉴욕과 샌프란시스코, 중국 상하이 변호사회와도 업무협약을 체결할 예정이다.

박 회장은 국내에서의 ‘청년의 길’도 모색 중이다. 서울시와 25개 구청이 변호사를 직접 채용하도록 추진하고 있다.

박 회장이 취임했을 당시 서울시에서 약 50명의 변호사가 일하고 있었고, 5개 구청만 변호사를 직접 채용하고 있었다. 박 회장은 “지방자치단체가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를 직접 채용하면 지자체의 위법한 행정 처분 때문에 고통 받는 국민들이 많이 줄어들 것”이라며 “법치 행정 확립과 변호사 채용 확대 차원에서 지자체와 변호사, 국민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라고 강조했다.

박 회장이 지난 1년간 서울 구청장 25명 중 23명을 만나는 등 발로 뛴 결과 변호사를 직접 채용한 구청은 10곳 넘게 늘었다.

○ “변호사의 사명은 공익 활동”

박 회장이 이끄는 서울변회의 신사업 중 눈에 띄는 건 ‘공익 전업 변호사 양성사업’이다. 공익·인권단체나 비영리기구 등에서 일할 공익 전업 변호사를 매년 2명 선발해 2년간 월 250만 원씩 지원한다. 변호사 법정단체로서는 처음 시도하는 사업이다.

박 회장은 “공익 변호사를 전업으로 하고 싶은 변호사가 많지만 경제적 문제 때문에 선뜻 나서지 못하고 있다”며 “내가 시작하지 않으면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는 사업이라 추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어 “변호사는 다른 유사 직역과 달리 공익 의무가 부과돼 있다”며 “공익 활동은 변호사 위상 제고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변회 차원에서도 직접 공익 활동에 뛰어들었다. 법원 청사의 장애인 편의시설 실태에 대한 설문조사를 진행하고, 법원 현장 방문을 통해 서울법원종합청사와 서울남부지법, 서울서부지법에 장애인 편의시설 개선 요청 의견서를 냈다. 또 일제 강제동원 문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한 한일 변호사 간담회를 열고, 베트남전 민간인 피해 사건에 대해 한국 정부에 진상규명을 촉구하기도 했다. 장애인 학대 사건 법률지원 매뉴얼, 소비자 법률 지원 매뉴얼 등을 제작했고, 공익 소송 실무 매뉴얼 등에 대한 강연회도 열었다.

박 회장은 “본업에 바빠 공익·인권 활동을 하지 못하는 회원들을 대신해 변호사단체가 당연히 나서야 할 일”이라며 “변호사단체가 회원들이 공익·인권 활동을 펼칠 수 있는 장(場)을 마련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 회원들에 의한, 회원들을 위한 변호사회

박 회장은 올 1월 당선 소감에서 “변호사의 실질적 복지를 위해 힘쓰는 변호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임기 시작 직후부터 회원들이 체감할 수 있고 실질적으로 혜택이 돌아갈 수 있는 복지사업을 발굴하는 데 주력해 왔다.

먼저 변호사들의 의무 연수 제도를 무료화했다. 서울 종로구 광화문에 위치한 변호사회 회관에 ‘광화문홀’을 열어 회원들이 자유롭게 드나들도록 했다. 또 서초구 서울변호사회 회관 회의실 이용료를 없애 회원들의 편의를 도왔다. 내년에는 24년째 기계식 주차장으로 방치돼 있는 회관 지하 2층을 개조해 회원들이 업무를 볼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 예정이다. 박 회장은 “서초동에 오면 있을 곳이 없다는 변호사들이 많다. 회관에 휴게 공간, 업무 공간을 만들어서 의뢰인도 데려와 상담할 수 있는 시설을 만들려고 한다”며 “회원들이 찾고 싶은 회관을 만들겠다”고 말했다.

새해에는 전자경유시스템을 도입할 예정이다. 변회 소속 변호사가 사건을 수임하려면 경유증을 구입한 뒤 경유증을 선임계에 붙여 검찰이나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현재 경유증은 서울변회 사무실에서만 구입할 수 있다. 박 회장은 회원들의 편의를 위해 회관을 찾지 않고도 온라인상에서 경유증을 살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박 회장은 “직원도 없이 혼자 일하는 변호사들도 많은데 바쁜 와중에 직접 회관을 찾아 경유증을 사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며 “전자경유시스템을 도입하면 전산으로 입력하니 수임 내역 등도 더 투명해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 검찰 개혁도 발로 뛴다

박 회장은 검찰 개혁,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등 올해 법조계의 주요 이슈에 변호사들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박 회장은 “변론하고 조사에 참여하는 변호사들은 직접적인 이해관계인인데 우리를 상대로 한 의견 조회나 공청회조차 없었다”고 했다.

국회에서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자, 박 회장은 적극적으로 변호사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해 나섰다. 올 7월 ‘공수처 및 수사권 조정 태스크포스(TF)’를 발족했다. 중립적인 관점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검찰, 경찰, 법원 출신 인사들을 모아 치열한 논의를 이어왔다.

변호사들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서울변회 소속 변호사들을 상대로 ‘검경 수사권 조정 및 공수처 설치 신속처리 법안에 대한 회원 설문 조사’도 진행했다. 설문조사에는 1488명의 변호사가 참여했다.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의 77.2%(1148명)가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입장에 공감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각론에선 의견이 갈렸다. 응답자의 51.8%는 수사권 조정이 필요하다고 답했지만 검찰의 수사지휘권을 폐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인 의견도 50.3%에 달했다.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는 47.5%가 긍정적인 답을 내놨다. 서울변회는 설문조사 결과를 국회와 유관기관에 전달하는 등 변호사들의 목소리를 전달하기 위해 노력했다.

앞으로도 검찰개혁이 제대로 된 방향으로 진행될 수 있도록 목소리를 높일 생각이다. 박 회장은 “현장에 있는 변호사들이 볼 때, 검찰의 직접 수사 권한은 줄이는 게 맞지만 한편으론 장기적으로 경찰의 특수수사에 대한 역량을 강화해야 하는 등 단계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 “지금은 단순히 정치적으로 검찰의 권한을 축소하려는 데만 집중하는 것 같아 우려스럽다. 결과적으로 피해를 보는 것은 국민들”이라며 “내년에는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단체가 입법부를 향해 목소리를 더 크게 내야 하는 상황이 온 것 같다”고 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둔 박 회장은 “임기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절반이 지났다. 앞으로 해야 할 일들만 태산처럼 보인다”며 웃었다. 상고심 강제주의, 변호사들의 비밀유지권 도입 등 남은 임기 기간 추진하고 싶은 과제가 아직도 많다고 했다. 박 회장은 “변호사 수의 급증과 송무 시장의 정체로 어려워진 변호사 시장에서 힘들어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려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남은 1년을 더욱 알차게 보내야겠다는 마음”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김예지 yeji@donga.com·이호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