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흰쥐의 해’로 본 쥐
게티이미지코리아
내년 과학계에서도 인간과 쥐가 각별한 관계로 발전할 중요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바로 인간의 세포를 가진 쥐의 탄생이다. 나카우치 히로미쓰(中內啓光) 일본 도쿄대 줄기세포연구소 교수 연구팀은 내년 상반기(1∼6월)에 쥐 배아에서 인간 세포를 배양한 ‘하이브리드 배아’를 만들어 대리 동물에게 이식하는 실험을 추진하고 있다. 국제학술지 네이처도 최근 나카우치 교수 연구를 ‘2020년 기대할 만한 과학이슈’로 꼽기도 했다.
○ 사람 세포 가진 쥐 장기이식 검증 빨라져
그동안 인간과 동물 세포를 결합하는 하이브리드 연구는 돼지를 대상으로 이뤄졌다. 돼지의 장기가 인간의 장기와 크기가 비슷해 이식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검증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게 단점이다. 반면 연구팀이 실험 대상으로 선정한 쥐는 돼지와 비교해 빠른 실험 결과를 얻는다는 장점이 있다. 박정규 바이오이종장기개발사업단장(서울대 의대 교수)은 “쥐는 돼지처럼 동물의 장기를 인간 장기로 활용하는 연구의 검증 속도를 종전보다 4∼5배 정도 빠르게 끌어올릴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 인간생명과학의 진보를 위해 희생한 쥐
사람 세포를 가진 쥐가 등장하기 전에도 사람과 쥐는 과학적으로 오랜 인연을 맺어 왔다. 중세시대에는 페스트균을 보유한 쥐벼룩이 옮긴 흑사병으로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으면서 한동안 쥐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최근에도 중국에서 흑사병이 발병해 쥐에 대한 두려움이 확산되기도 했다. 하지만 쥐가 없었다면 지난 한 세기 동안 생명과학의 진보는 쉽게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더 많다.
쥐가 과학자들의 눈에 들어온 건 19세기 말이다. 일부 학자들이 질병 메커니즘과 치료 방법을 찾는 데 쥐를 본격적으로 사용하면서부터다. 영국은 이미 1876년 실험 쥐 관리와 관련된 사안을 법률로 규정했을 정도다.
쥐를 활용해 이뤄낸 위대한 발견은 셀 수 없이 많다. 대부분의 질병 연구가 쥐를 통해 이뤄진다고 볼 수 있다. 신약의 효용을 확인하거나 화장품의 독성을 테스트할 때, 질병의 발병 이유를 세포나 유전자 수준에서 확인할 때도 쥐가 활용된다.
○ 쥐 희생 막을 새로운 기술들
일부에선 실험동물의 과도한 희생을 동반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최근에는 쥐의 희생을 줄이기 위한 다양한 기술이 실험에 활용되고 있다. 유전학에서는 ‘오가노이드’ 연구가 한창이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3차원적으로 배양하거나 재조합해 만든 장기유사체다. 2009년 한스 클레버르스 네덜란드 휘브레흐트연구소 교수팀이 생쥐의 직장에서 얻은 줄기세포로 작은 크기의 내장을 만든 것을 시작으로 현재 미국과 일본 등에서 심장, 위, 췌장, 갑상샘 등을 만들었다.
최근에는 플라스틱 위에 세포를 배양해 인체 조직이나 장기를 모방한 장치도 등장했다. 일명 ‘장기칩’이라 불리는 이 장치는 쥐를 대신해 생명 현상을 연구하고 신약 후보물질을 실험할 수 있다. 허동은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바이오공학과 석좌교수는 올 9월 안구 표면을 형성하는 각막과 결막, 이 위를 덮은 눈물층까지 재현한 칩을 개발했다는 연구 결과를 국제학술지 ‘네이처 메디신’에 발표했다. 허 교수는 “안구 독성을 알아보는 동물실험을 대체하거나 신약 개발 및 콘택트렌즈 테스트에 활용할 수 있고 다양한 안구 질환의 기전 연구에도 응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