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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닭강정 30인분’ 소동[횡설수설/구자룡]

입력 | 2019-12-30 03:00:00


‘졸업 후까지 학교폭력이 계속되다니!’라는 사회적 공분을 일으켰다가 불법 대출 사기단의 괴롭힘 사건으로 반전된 ‘닭강정 30인분’ 파동은 ‘학폭’ ‘작업 대출’, 그리고 인터넷 시대 여론 형성의 ‘깃털 같은 가벼움’까지 우리 사회의 다양한 모습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사건은 분당의 닭강정 점주 A 씨가 가정집에 30인분 배달을 갔다가 “졸업 후에도 아들을 괴롭히는 아이들이 주문한 것 같다”는 말을 듣고 인터넷 커뮤니티에 ‘악마 같은 학폭 가해자를 처벌하자’는 취지의 글을 올리면서 시작됐다. 누리꾼들은 ‘성인이 되어서도 학폭 피해가 계속되는 것’이라는 분노의 댓글을 쏟아냈으나 사실은 불법 대출 사기에 연루된 피해자에게 사기단이 보복을 한 ‘허위 주문’ 소동이었다.

▷피해자의 어머니는 30마리나 배달된 닭강정을 보고 아들이 괴롭힘을 당하고 있다고 걱정했다. 닭강정 점주는 이 말을 듣고 의분으로 인터넷에 올려 고발했다. 그의 글을 본 누리꾼들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일부 인터넷 언론은 ‘닭강정 학폭 사건’이라며 대서특필했다. 이 모든 일은 불과 하루 남짓 만에 빠른 속도로 전개됐다. 누리꾼들의 뜨거운 반응은 ‘학폭’이 얼마나 대중적인 공분을 사는 예민한 사회 문제인지 유감없이 보여준다.

▷‘허위 주문’은 피해자 어머니의 아들에게 ‘작업 대출’ 교육을 시켰으나 그 청년이 실행에 옮기지 않아 ‘고리(高利) 수수료’를 못 받게 된 사기단의 소행이었다. ‘작업 대출’은 신용불량이나 연체 등으로 대출이 어려운 사람의 신용 정보를 ‘전산 작업’ 해서 진행한다. 엄연한 불법이고 수수료를 대출금의 30∼80%나 뜯어가지만 취업준비생 무직자 대학생 주부 등 상대를 가리지 않고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다.

▷‘닭강정 30인분’ 사건이 팩트와 추측이 혼합되면서 순식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과정에서 특별한 악의는 개입되지는 않았다. 초스피드로 이루어지는 온라인 여론 형성이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순식간에 과장된 미담과 영웅을 만들 수도, 방향이 틀리면 누군가에게는 억울한 ‘주홍글씨’를 새길 수도 있다.

▷온라인상에서 진실과 거짓, 미담과 악행, 선악 판정이 진위를 확인할 시간 여유 없이 순식간에 내려진 뒤 일단 퍼져나가면 사마난추(駟馬難追·한 번 뱉은 말은 말 네 필이 끄는 수레로도 따라갈 수 없다)가 되어 쉽게 주워 담을 수가 없게 된다. 옛말에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했는데, 온라인 시대에는 확산 범위는 물론 속도마저 번갯불보다 빠르니 참으로 위험하고 조심스러운 세상이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