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주택가 숨은 맛집 찾는 재미… 석촌호수 산책은 덤

입력 | 2019-12-30 03:00:00

[스트리트 인사이드]서울 송파구 ‘송리단길’
롯데월드타워 들어선뒤 발길 늘어… 기존상권에 뜨는 맛집들 잇단 등장
단골이 손으로 쓴 안내문구 친근감… 송파구, 맛집지도 만들어 홍보 앞장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인근의 ‘송리단길’ 풍경. 평범한 주택가처럼 보이지만 골목 곳곳에서 특색 있는 카페나 음식점 등을 숨바꼭질하듯 찾을 수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7일 오후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동호 남쪽의 송파동 주택가. 흔한 빌라촌처럼 보였지만 곳곳에서 추운 날씨에도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선 모습이 눈에 띄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입소문이 난 소위 ‘맛집’을 찾는 이들이다. 오래된 슈퍼마켓이나 미용실, 부동산, 세탁소 등 평범한 주택가 상가 사이사이에 ‘힙(Hip·새롭고 개성이 강하다는 뜻)한 맛집’이 보물처럼 숨어 있었다.

1층에 횟집이 위치한 건물의 4층으로 올라가니 석촌호수와 롯데월드타워가 한눈에 시원하게 들어오는 루프톱 카페였다. 개화기 느낌이 물씬 풍기는 건물에 들어가면 매콤한 어묵으로 인기 있는 분식점이 나타난다. SNS 이용자들은 이곳을 ‘송리단길’(송파동+이태원 경리단길)이라고 부른다.

송리단길이 뜨기 시작한 것은 2016년 12월 인근에 롯데월드타워가 완공된 뒤 일대 유동인구가 크게 늘면서부터. 이전엔 다세대 주택이 밀집한 평범한 주택가였고 가게도 슈퍼마켓, 미용실 등 생활 밀착형 업종이 대부분이었다. 임대료가 저렴해 독특한 음식점과 카페가 몇몇 문을 열긴 했지만 크게 주목받진 못했다. 하지만 롯데월드타워와 석촌호수를 찾았다가 가까운 이 지역을 들른 젊은이들의 눈에 포착되면서 SNS를 통해 입소문이 났다.

27일 오후 송리단길의 한 일본 음식점 앞에서 손님들이 저녁 영업시간을 기다리며 길게 줄을 서 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2014년 3월부터 송리단길 골목에 자리 잡은 일본 가정요리 음식점 ‘만푸쿠’가 대표적이다. 10평 남짓한 이 가게의 안팎에는 종이와 나무판에 직접 쓴 안내 문구 등이 덕지덕지 붙어 있어 친숙함을 준다. 단골손님들이 선물한 것이라고 한다. 27일 오후 5시경 저녁 영업시간은 30분이나 남아있었지만, 10명의 손님이 가게 앞을 메우고 기다리고 있었다.

이정우 만푸쿠 대표(34)는 “5년 전 처음 가게를 내려고 알아보던 중 이곳이 임대료가 저렴해 자리 잡았다”며 “이후 젊은 셰프들의 음식점이 하나둘 들어왔고 소문이 나면서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것 같다”고 말했다.

다른 뜨는 거리와는 다른 송리단길만의 특징은 기존 주택가와 SNS 인기 맛집의 이색적인 동거다. 골목골목 숨바꼭질하듯 숨어있는 맛집을 찾는 매력이 있다. 오래전부터 정갈한 폐백음식을 팔아온 점포 맞은편에 방탄소년단(BTS)의 멤버 친형이 운영하는 일식집 ‘오쓰세이로무시’가 있다. 수제버거집 ‘다운타우너’의 대기줄은 상호로 ‘푸줏간’을 쓰는 오래된 정육점까지 이어진다.

개성 넘치는 가게가 즐비하다는 점도 젊은이들의 발길을 잡는 이유다. 대창덮밥 등을 판매하는 음식점 ‘단디’ 앞에 줄을 서고 있던 이은주 씨(23·여)는 “SNS에선 송리단길 맛집을 모두 돌아보는 일종의 ‘도장깨기’가 유행 중”이라며 “방학을 맞아 평소 인스타그램으로만 봐왔던 음식을 먹기 위해 친구와 함께 경기 성남시 분당에서 찾아왔다”고 했다. ‘단단히’를 뜻하는 부산 방언 ‘단디’를 상호로 하는 이곳은 부산 출신 청년들이 시작해 SNS에서 인기를 얻은 곳이다. 인근 지역 주민 정준모 씨(42)는 “몇 년 새 젊은층이 많아지고 지역에 활기가 생긴 것 같아 반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송리단길이 인기를 끌자 송파구도 적극적으로 지원에 나서고 있다. 강남권의 첫 관광특구인 잠실관광특구에 속해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살려 특화거리로 조성한 뒤 홍보에 나서고 있다. 지난해 10월과 올 9월 송리단길 음식점 100여 곳의 정보를 담은 맛집지도를 제작했고, 각 음식점에는 QR코드를 설치해 영어 중국어 일본어로 메뉴와 영업시간 등을 볼 수 있도록 만들었다. 송리단길의 양쪽 끝에는 무인관광안내시스템(키오스크)과 고보조명(홍보용 문구를 바닥이나 벽면에 쏘는 장치)을 설치했다.

다만 ‘뜨는 거리’에서 나타나는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걱정도 시작되고 있다. 4년째 이곳에서 음식점을 운영 중인 사장 A 씨는 “처음 자리 잡았을 때보다 임대료가 70∼80%가 올랐다. 아직은 괜찮지만 이런 추세가 계속될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송파구 관계자는 “아직 우려할 정도의 임대료 상승은 나타나고 있지 않다”며 “추후 상인회 등이 조성되면 소통하며 문제 해결에 나설 것”이라고 설명했다.

맛집과 카페 외엔 인근 볼거리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리단길에서 카페를 운영하는 B 씨는 “음식점과 석촌호수, 롯데월드타워를 빼면 아직 명소라고 할 만한 곳이 부족하고 오후 10시만 돼도 주택가답게 깜깜해진다”며 “더 많은 사람들이 찾을 수 있도록 콘텐츠 개발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