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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300여 건 ‘살인음모’… 음주운전 없는 새해 되길[광화문에서/김재영]

입력 | 2019-12-31 03:00:00


김재영 경제부 차장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다. 음주운전 얘기다. 28일 경기 화성시에서 만취한 30대가 음주운전 사고를 내고 달아나다가 자신을 붙잡은 피해 차량 운전자를 폭행해 경찰에 검거됐다. 27일 새벽엔 광주에서 술에 취한 운전자가 다리 난간을 들이받고 추락했다. 25일 밤 세종시에선 음주운전 차량이 역주행해 버스를 들이받아 3명이 다쳤다.

보도되지 않은 사고나, 다행히 사고가 나기 전에 단속에 걸린 경우는 훨씬 많다. 경찰청에 따르면 이달 1일부터 22일까지 음주운전으로 단속된 인원만 8295명, 하루 평균 377명에 이른다. 사실상 ‘살인예비음모’로 볼 수 있는 범죄행위가 매일 이렇게나 많이 벌어진다.

경찰이 9월부터 진행한 100일 특별단속 기간 동안 하루 평균 225명이 단속됐다니 연말 들어 부쩍 증가한 셈이다. 물론 경찰이 단속을 더 열심히 했기 때문이겠지만, 단속 기준과 처벌 수위를 강화한 이른바 ‘윤창호법’ 시행 이후 반짝 커졌던 경각심이 해이해진 건 아닌지 걱정도 든다. “음주운전 사고는 실수가 아닌 살인행위”라던 청와대조차 음주운전으로 장관직에서 낙마한 인사를 최근 인사청문회가 필요 없는 차관급 자리에 다시 기용할 정도니.

단순한 실수라기엔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들의 고통은 짙고 길다.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방재연구센터가 음주운전 사고 피해자 300명을 설문조사해 지난달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피해자의 약 3분의 2가 사고로 3주 이상 입원 치료를 받았고 후유장애에 시달렸다고 답했다.

피해자의 22.7%는 사고 이후 직업이 바뀌었다고 했다. 직업 변동이 있었다는 응답자 중에 사고 전엔 회사원(정규직)이 55.9%로 다수였는데 사고 후엔 임시직(시간제)이 29.4%로 가장 많았다. 직장을 옮기면서 일자리의 질이 나빠진 것이다. 사고 이후 실직한 경우 재취업하기까지는 평균 2년 9개월이나 걸렸다.

개인적인 삶도 달라졌다. 사고 당시 기혼이었던 피해자의 약 8.1%가 배우자와 헤어짐(이혼, 별거, 가출 등)을 겪었다고 답했다. 경제적 여건 악화, 원만한 관계 유지 어려움, 후유장애에 따른 배우자 부담감 증가 등을 이유로 꼽았다. 응답자의 34.0%는 심리적 위축과 신체적 불편 등으로 사고 이후 사회적 모임에 참여하는 횟수가 줄었다고 했다.

이에 비하면 가해자의 고통은 미미하다. 처벌이 강화됐다지만 벌금이나 집행유예가 대부분이다. 가해자에게 지울 수 있는 사고부담금 한도는 최고 400만 원에 그친다. 이러니 상습적으로 술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는 사람이 줄지 않는다. ‘음주운전=패가망신’이라는 공식이 성립할 수 있도록 엄한 처벌과 지속적인 감시가 필요하다. 가해자 배상 책임을 높이고 미국, 유럽 등에서 시행하는 ‘음주운전 시동잠금장치(IID)’ 부착을 의무화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2019년도 이제 하루 남았다. 송년회는 용케 넘겼대도 아직 신년회의 유혹이 남았다. ‘딱 한 잔은 괜찮겠지’ ‘이 정도 쉬었으니 괜찮겠지’ 재지 말고 한 방울이라도 마신다면 절대 운전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보여야 한다. 차라리 음주운전 단속 기준은 ‘혈중알코올농도 0.00%’라고 생각하는 게 속 편하다. 내년엔 음주운전 사고로 피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단 한 명도 나오지 않기를 소망해 본다.
 
김재영 경제부 차장 redfoot@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