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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사장[횡설수설/김광현]

입력 | 2019-12-31 03:00:00


공기업은 정부가 주인이다. 정부가 회장이나 사장을 사실상 마음대로 결정할 수 있다. 하지만 KT나 포스코처럼 공기업이 국민주를 통해 민영화되면 주식을 가진 주주가 주인이 된다. 최고경영자(CEO) 선임은 당연히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내려야 한다. 아주 당연한 이야기인데 당연한 것이 당연하지 않은 게 현실이었으니 항상 말썽이 벌어졌다.

▷27일 KT 이사회는 전원 합의로 새로운 CEO 후보에 커스터머&미디어 부문장인 구현모 사장을 단독 확정했다. 황창규 회장의 임기가 끝나는 내년 3월 주총에서 최종 승인될 예정이다. 구 사장은 1987년 입사한 정통 KT맨으로 전략 기획이 전문이다. 11년 만의 내부 출신 CEO인 것이다. 앞으로 계열사 43개, 임직원 6만1000명, 연 매출 23조 원, 자산 34조 원으로 재계 순위 12위인 KT그룹을 이끌게 된다. 연봉도 내리고 공식 직함을 대표이사 회장이 아닌 대표이사 사장으로 낮춰 겸손 모드로 갈 모양이다.

▷KT는 포스코, KT&G 등과 마찬가지로 주인이 워낙 많고 흩어져 있다 보니 사실상 주인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그동안 회장 인선에 청와대를 포함한 정권 실세의 입김이 절대적이었다. 그 후과(後果)로 전임자들이 줄줄이 불행한 일을 겪어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남중수 사장과 이석채 회장이 재판을 받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황창규 회장 역시 정권이 바뀌자 수사를 받았다.

▷그러다 보니 이번 인사에서 구 사장 개인보다 사장 선발 과정에 눈길이 쏠렸다. KT 이사회는 먼저 사외이사가 특정 인사를 추천하면 자동으로 회장 후보군에 포함되는 사외이사 추천제를 없앴다. 정권 실세의 영향력 행사 통로로 지목받아오던 제도다. 그 대신 완전공모제를 통해 후보군을 투명하게 짜고 지배구조위원회-회장후보심사위원회-이사회를 거쳐 후보를 좁혀왔다. 황 회장은 일찌감치 차기 회장 선임 과정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선을 그었고 최종 이사회에도 들어가지 않았다.

▷정부로서도 이목이 집중된 KT 인선에 드러내놓고 간여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작년 포스코 최정우 회장 선임 과정에서도 과거보다 정치적 입김이 적었다는 평가가 있다. 반면 올해 KT&G 백복인 사장의 연임을 막으려고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 지분을 동원했다가 의도를 관철하지 못하고 정부 체면만 구긴 일도 있었다. 민영화된 공기업의 CEO 선임이 투명하게 이뤄지는 관행이 쌓여가야 한다. 이번 구 사장 선임이 담고 있는 가장 큰 의미는 2002년 KT 민영화 이후 사실상 첫 평화적 CEO 교체라고 할 수 있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