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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도생’보단 ‘절전지훈’[육동인의 業]〈30〉

입력 | 2019-12-31 03:00:00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

‘절전지훈(折箭之訓)’이란 사자성어가 있다. 매년 초 최고경영자(CEO)나 정치인들의 신년 인사에 자주 등장하는 말이다. 옛날 중국 남북조 시대에 선비족이 세운 토욕혼이란 나라의 왕 아시가 죽으면서 왕자 20명에게 남겼다는 교훈이다. ‘화살 한두 개는 쉽게 꺾이지만, 여러 개 묶어놓으면 꺾기 힘들다’는, 쉽게 말해 ‘협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뜻이다. ‘화살 꺾기’ 교훈은 글로벌하다. 일본에선 ‘세 개의 화살’이란 관용구가 요즘도 자주 쓰인다. 아베 신조 총리의 경제 정책을 설명할 때 사용되기도 했다. 16세기 전국시대 영웅 모리 모토나리가 세 아들에게 당부했던 말이라고 한다. 우리도 고구려 대막리지 연개소문이 죽기 전 아들들에게 절전지훈을 강조했다는 일화가 내려온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유대인 가문 중 하나인 로스차일드 패밀리를 상징하는 문양은 아예 화살 5개를 묶은 것이다. 화살 5개는 5명의 아들을 상징한다. 대금업자였던 메이어 로스차일드는 아들들이 독일,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 살면서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도록 했다. 1815년 영국과 프랑스 사이에 벌어진 워털루전투에서 영국이 승리했다는 정보를 가장 먼저 안 이들은 영국이 졌다고 소문을 퍼뜨린 후 영국 국채가 폭락하자 이를 헐값에 대량으로 사들여 초대박을 터뜨린다. 요즘 기준으로 보면 명백한 증권시장 공시 위반이겠지만, 어쨌든 형제들의 협동이 막대한 부의 원천이 된 셈이다.

유대인 성공 비결을 흔히 돈에 대한 긍정적인 사고방식과 강한 교육열에서 찾는다. 그러나 핵심은 협동심이다. 냉혹한 비즈니스 세계에서는 더욱 그렇다. 오랜 고난과 핍박을 거치면서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는 생각이 뿌리 깊게 박혀 있는 탓이다. 20세기 초 전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은 이스라엘로 이주해 키부츠라는 집단농장을 통해 국가의 틀을 잡아 나갔다. 키부츠라는 말이 바로 협동을 뜻하는 히브리어다.

실제 유대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에 가난한 사람이 있으면 그건 그 사람 잘못이 아니라, 그를 도와주지 못한 이웃들 잘못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가난한 사람을 적극 도와준다. 그 사람이 가난을 면하면 주변의 다른 가난한 사람을 돕는 식이다. 물론 유대인들의 협동은 주로 자기들만의 협동을 의미해 이웃들과 불편한 관계가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다.

교수신문이 올해를 상징하는 사자성어로 ‘공명지조(共命之鳥)’를 선정했다. 한 몸통에 머리가 두 개 달린 새의 두 머리가 서로 질투하다가 결국 모두 죽게 된다는 슬픈 얘기다. 자기만 살려고 하지만 어느 한쪽이 사라지면 자기도 죽게 되는 것을 모르는 현재 한국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이 선정의 이유라고 한다. 우리는 원래 두레나 품앗이 등 협동의 전통을 가진 민족이다. 그런데 요즘엔 ‘동업은 망한다’는 인식이 더 자연스럽다. 실제 공동으로 창업하거나 경영하는 비율도 외국보다 현저히 낮다. 그야말로 ‘각자도생’의 시대다. 2020년 새해엔 우리 사회가 화살 꺾기 교훈을 새겨봤으면 한다. 너 죽고 나 살기는 공멸뿐이다.
 
육동인 강원대 초빙교수·직업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