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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은 그만… 도쿄에선 태극기 들고 웃을래요”

입력 | 2019-12-31 03:00:00

[도쿄 우리가 간다]‘효자종목’ 양궁의 이우석-이은경




‘올림픽 메달보다 대표팀에 뽑히는 게 더 어렵다’는 세계 최강 한국 양궁 대표팀의 동갑내기 친구 이은경(왼쪽)과 이우석이 충북 진천선수촌 양궁장에서 과녁을 조준하고 있다. 1, 2차 선발전까지 이우석은 남자 1위, 이은경은 여자 2위를 달리고 있어 이변이 없는 한 도쿄 올림픽 무대를 밟을 가능성이 높다. 둘은 선발전에서 탈락해 2016년 리우 올림픽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진천=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도쿄에서는 태극기 들고 울어야죠.”

이은경(22·순천시청)의 말에 이우석(22·코오롱)이 살짝 눈을 흘겼다. 세계 최강 한국 양궁 대표팀에서 둘은 오랜 친구이자 가장 스스럼없는 사이다. 둘은 자신들을 ‘톰과 제리’라고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이은경은 짓궂게 ‘눈물’ 얘기를 꺼냈다. 지난해 열린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아경기에서 이우석은 불운의 아이콘이었다. 이우석은 대표 선발전을 1위로 통과해 한국 남자 선수 중 유일하게 개인전과 단체전, 혼성전까지 3종목에 출전했다. 내심 금메달 3개가 목표였다.

그런데 결과는 전혀 딴판이었다. 남자 단체전 결승에서는 마지막 발에서 8점을 쏘는 실수로 은메달을 땄다. 팀 선배 김우진(27·청주시청)과 치른 개인전 결승에서도 다 잡았던 경기를 놓쳤다. 혼성전에서는 8강에서 탈락했다. 모든 것이 자기 잘못인 것 같아 이우석은 소리 내어 울었다.

이은경은 “평소 메달을 못 따거나 하면 서로 놀린다. 그런데 그날은 우석이가 너무 서럽게 울어 차마 아무 말도 못했다”고 했다. 이은경도 늘 웃기만 한 것은 아니다. 같은 대회 여자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딴 기쁨도 잠시. 곧바로 이어진 양궁 월드컵부터 오랜 부진이 이어져 눈물을 쏟을 때가 많았다. 이은경은 대표팀에서도 탈락했다가 약 1년 만에 다시 선수촌으로 복귀했다.

아픔을 겪은 두 선수는 크리스마스이브인 24일에도 충북 진천선수촌에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었다. 내년 도쿄 올림픽에서 활짝 웃기 위해서였다.

한국 양궁은 2016년 브라질에서 열린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전 종목(금메달 4개) 석권이라는 금자탑을 쌓았다.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어지나 했으나 도쿄 올림픽에서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남녀 개인, 단체전에 남자 1명과 여자 1명이 짝을 이뤄 출전하는 혼성 종목이 추가됐기 때문이다. 이전까지는 한 선수가 딸 수 있는 최대 금메달이 2개였지만 도쿄 올림픽부터는 3관왕도 나올 수 있다.

리우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이우석은 아쉽게 4위를 했다. 이은경은 최종 선발전 출전 선수 8명 중 8위였다. 항상 2%가 모자라던 둘은 지난해 아시아경기에서 처음으로 국제 종합대회에 출전했다.

이우석은 “올림픽에서 활을 쏘고, 메달을 따는 건 가슴속에 오랫동안 품어 왔던 꿈”이라고 했다. 이은경 역시 “아∼, 진짜 나가고 싶다”고 기대감을 밝혔다.

이은경은 “우석이가 금메달 3개 딸 거예요. 얘는 할 수 있어요. 정말 열심히 하거든요”라고 말했다. 이에 이우석은 “저는 어떻게 될지 정말 모르겠어요. 그런데 은경이는 잘됐으면 좋겠어요”라고 치켜세웠다.

아직 정확한 선발 방식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두 선수가 혼성전에서 짝을 이룰 가능성도 있다. 이은경은 “우석이랑 같이 하면 너무 좋을 것 같다. 서로 실수해도 편하게 감싸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실제로 둘은 고3 때 미국에서 열린 유스세계대회에서 딱 한 번 혼성전에서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결과는 금메달이었다.

두 선수가 도쿄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올림픽 금메달보다 어렵다’는 국가대표 선발전을 먼저 통과해야 한다.

현재까지 분위기는 좋은 편이다. 올해 열린 1, 2차 선발전까지 이우석은 남자 1위를, 이은경은 여자 2위를 달리고 있다. 올림픽에는 남녀 3명씩만 출전할 수 있다.

대한양궁협회는 내년 3월부터 한 차례의 선발전과 두 차례의 평가전 등 3차례의 대회를 통해 최종 3명을 선발할 계획이다. 3월 열리는 제3차 선발전에는 남녀 8명씩의 국가대표 선수들과 12명씩의 외부 선수들이 경쟁한다. 선발전을 통과한 남녀 8명의 선수가 2차례의 평가전을 통해 마지막 3명을 추린다. 잠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살얼음판 같은 경쟁이다.

“오진혁과 김우진, 임동현 등 쟁쟁한 형들과는 연습 경기를 해도 올림픽 결승전 같은 긴장감을 느낀다. 올림픽처럼 큰 무대에서 자신의 기량을 맘껏 펼치는 게 존경스럽다.”(이우석)

“만약 대표팀에 뽑힌다면 무엇보다 단체전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다. 개인전도 한국 선수가 금메달을 따면 좋을 것 같다. 그게 나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웃음).”(이은경)

결전을 앞둔 동갑내기 궁사들의 표정은 밝기만 했다. 어떤 어려움도 즐겁게 뚫겠다는 자신감이 넘쳐 보였다.
 
진천=이헌재 기자 un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