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민센터앞 놓고간 돈 금세 사라져 CCTV 분석해 대전부근서 체포… 4시간만에 6000여만원 회수 30대 2명, 컴퓨터점 어렵자 범행… 26일부터 車 세워놓고 기다려 ‘얼굴없는 천사’ 19년간 6억 기부
충남 논산경찰서가 범인들로부터 회수한 전주 ‘얼굴 없는 천사’가 놓고 간 박스에 들어 있던 성금. 논산경찰서 제공
전주 완산경찰서는 30일 특수절도 혐의로 A 씨(35) 등 두 명을 붙잡아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들은 이날 오전 10시 5분경 전주시 완산구 노송동 주민센터 옆에 있는 ‘천사공원’에 얼굴 없는 천사가 두고 간 성금이 든 상자를 훔쳐 달아난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고교 선후배 사이인 이들은 돈을 구하려고 인터넷을 검색하다 얼굴 없는 천사가 매년 비슷한 시기에 성금을 놓고 사라진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며 “주민센터가 문을 열 때부터 닫을 때까지 인근에 차를 세워두고 천사를 기다렸다”고 말했다.
경찰은 인근 폐쇄회로(CC)TV를 분석하다 최근 수상한 차량을 발견해 차량 번호를 적어뒀다는 한 주민으로부터 제보를 받았다. 이 주민은 “26일과 27일 동네에서 보지 못하던 차가 주차돼 있었다”며 “오늘 오전 10시경 세금을 내기 위해 우체국에 가는데 차량 앞쪽과 뒤쪽 번호판이 가려져 있어서 이상하게 생각했다”고 말했다.
이들은 조사를 위해 전주 완산경찰서로 압송되면서 ‘왜 돈을 훔쳤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경찰은 이들을 상대로 자세한 범행 경위 등을 조사한 뒤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절도범들이 붙잡히면서 성금 6000여만 원도 회수됐다. 훔친 박스에는 5만 원권 지폐를 500만 원 단위로 묶은 현금 12다발과 노란색 돼지저금통, ‘소년소녀가장 여러분 고생하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라는 메시지가 적힌 A4 용지가 들어 있었다.
얼굴 없는 천사는 2000년 4월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 달라’며 58만4000원을 주민센터 인근에 놓고 간 것을 시작으로 매년 수천만∼1억 원 상당을 기부했다. 지난해까지 19년 동안 성금 6억834만660원을 놓고 사라졌다. 아직 돼지저금통에 든 동전이 얼마인지 확인되지 않았지만 얼굴 없는 천사의 기부금은 이번 성금을 포함해 6억7000만 원이 넘을 것으로 보인다. 노송동 주민센터 관계자는 “천사도 성금 도난으로 많이 놀랐다고 들었다. 범인을 붙잡고 성금을 회수해 천만다행”이라고 말했다.
전주=박영민 기자 minpres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