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그제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역대 최저 법안 처리율로 식물 국회라는 오명을 얻었고, 국회 선진화법까지 무력화되는 볼썽사나운 모습이 재연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법과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을 놓고 여야가 격돌해 아수라장이 된 국회를 비판한 것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강 건너 불구경 하듯이 국회를 비난만 할 상황은 아니다.
여당은 문 대통령의 권력기관 개혁 1호 공약인 공수처법 처리를 위해 온갖 ‘꼼수’를 동원했다. 제1야당을 배제한 채 군소야당을 끌어들여 전례 없는 ‘4+1’ 협의체를 만들었고, 군소야당에 비례대표 의석을 늘려주는 선거법을 선물하는 뒷거래를 했다. 500조 원이 넘는 국가 예산도 막판에 ‘4+1’ 밀실 협상에서 조정했다. 이 모든 과정에 청와대의 보이지 않는 압력이 작용했을 것이다.
더욱이 공수처법 표결 직전 ‘4+1’ 내부 이탈표가 우려되자 여당은 ‘농산어촌의 지역 대표성을 최대한 보장하는 방향으로 선거구를 획정한다’는 합의서까지 만들어 줬다. 향후 선거구 획정 시 군소야당 후보들의 지역구를 살려주겠다는 약속을 한 것이다. 사실상의 매표(買票) 행위나 마찬가지다.
이제 문재인 정부는 집권 4년 차를 맞았다. 국민들에게 하나씩 정책 성과를 보여야 할 때다. 국민 전체가 아니라 지지자들의 요구에만 부응하는 통치는 정권은 물론 나라의 미래마저도 망칠 수 있다. 지지층만 결집한다면 총선에서 승산이 있다는 정치적 계산에 매몰되어선 안 된다. 대통령은 특정 정파의 이익과 지지자들의 대변인 역할을 뛰어넘어 국론 통합의 리더십으로 평가받아야 한다. 지지층만 쳐다보지 말고 도도한 민심의 저류를 읽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