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로 통해 받은 용기와 힘으로 새 목표 세워 정진하는 새해 되길
서정보 문화부장
“믿어요, 오래 지켜봐 온 사람이에요.”(운영팀장)
“조사도 안 해보고 믿는 건 일을 흐리멍덩하게 하는 것 아닙니까.”(단장)
프로야구 만년 꼴찌팀 드림즈라는 가상의 팀을 배경으로 한 드라마가 방영 초반 시청률 10%를 넘길 정도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새로 부임한 단장은 스카우트 관련 비리를 저질렀을 법한 스카우트팀장을 거론하며 운영팀장에게 묻는다. 왜 믿느냐고.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람이라는 운영팀장의 대답은 말 그대로 ‘흐리멍덩’할 수밖에 없다.
이 드라마의 인기 비결로는 단장 역을 맡은 배우 등 출연진의 카리스마와 호연, 그리고 진짜 프로야구계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같이 현실감 넘치는 스토리가 꼽힌다.
드라마와 같은 대중문화의 인기는 항상 시대의 요구와 함께한다. 과거 질서에 대한 도전일 수도 있고, 치열한 경쟁 속에 지친 사람들에 대한 위로일 수도 있다. 2019년 대중문화가 반영한 시대의 요구는 ‘위로와 격려’였다. 신드롬을 불러일으킨 ‘펭수’ 캐릭터가 그랬고,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도 그랬다. ‘너 자신을 사랑하라’는 방탄소년단(BTS)의 노래 가사들은 입시 경쟁에 지쳐 자존감을 잃어가던 청소년들의 마음에 다디단 샘물처럼 스며들었다.
위로와 격려의 세례를 받은 이들은 스스로를 얽매던 쓸데없는 걱정과 패배자가 되지 않을까라는 두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깨달았다면, 용기를 얻었다면 나 자신을 돌아보고 새로이 목표를 세우고 정진하는 일은 위로와는 또 다른 차원의 문제다. 위로 중독증에 걸리거나 격려 뒤에 안주해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드림즈는 미국으로 외국인 선수를 스카우트하러 간다. 하지만 다른 팀이 ‘돈질’로 드림즈가 점찍었던 선수를 가로채자 운영팀장이 “(재정 상황이 열악한 우리가) 어차피 질 수밖에 없는 게임이었다”고 자조한다. 그때 단장은 이렇게 일침을 놓는다. “과외를 못 해서 대학을 못 갔다, 돈이 없어 졌다…. 서로 다른 여건에서 각자의 무기를 갖고 싸우는 건데 핑계를 대기 시작하면 똑같은 상황에서 또 질 수밖에 없습니다.”
드림즈 단장은 국가대표 5번 타자인 프랜차이즈 스타플레이어지만 팀 내 질서를 어지럽히는 선수를 트레이드하고, 비리에 연루된 스카우트팀장을 과감하게 해고하면서 팀에 새로운 질서를 만든다. 소를 한 번 잃어버렸지만 외양간을 고쳐야 소를 다시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드라마를 보면서 스스로를 되돌아보고, 내 안의 질서를 다시 추스를 기회를 얻은 대목이 있다.
“제가 팀장을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하라고 팀장을 시킨 게 아니라 지금까지 하던 대로 잘하라고 팀장을 시킨 겁니다.”
기해년은 가고 경자년이 온다. 기해년에 흠뻑 받은 위로를 경자년엔 자신의 미래를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삼기를 바란다.
서정보 문화부장 suhcho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