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몇 여성이 장애인 공동체를 찾아와 후원금이 든 봉투를 내밀고 공동체 대표인 사람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고맙다는 말을 기다리는 것 같았다. 그런데 대표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있다가 말했다. “왜 가만히 계십니까? 제게 고맙다고들 하셔야지요.” 누군가에게 봉사할 기회를 갖게 된 것에 감사하라는 의미였다. 농담조로 한 말이었지만 타자를 섬기는 것과 관련한 깊은 뜻이 담긴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고마움은 도움을 받는 자가 도움을 주는 자에게 표시하는 것이지만 대표의 생각은 달랐다. 상처와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을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니 고맙다는 말을 굳이 들을 것까지 없다. 누군가에게 뭔가를 베풀며 살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그러니 방향을 돌려 도움의 대상을 향해 고맙게 생각하자는 말이었다.
그 말을 한 사람은 벨기에에서 신부 서품을 받고 1년 후인 1959년, 스물아홉 살의 나이로 한국에 와서 한국인을 위해 헌신하다 2019년에 세상을 떠난 디디에 신부였다. 지정환이라는 이름으로 더 잘 알려진 신부는 진정한 환대가 무엇인지 실천적 삶을 통해 보여준 사람이었다. 그를 한국으로 이끈 것은 한국인들의 가난이었다. 한국은 전쟁으로 폐허가 돼 있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이 사목하는 곳을 어떻게든 잘사는 곳으로 만들어 주려고 했다. 부안에서는 간척사업을 했고, 임실에서는 한국 최초로 치즈를 만들어 가난한 시골 마을을 한국 치즈산업의 중심이 되게 했다. 그에게 신앙은 실천이었다.
그러던 그가 다발성신경경화증에 걸려 휠체어를 타야 하는 장애인이 되자 이번에는 장애인들에게 헌신하는 삶을 살았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과 장애인들, 자신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모든 사람을 늘 고맙게 생각했다. 그들이 있었기에 봉사하는 삶을 살 수 있었다. 그가 후원금을 들고 온 사람들에게 고마움의 방향을 생각해 보라고 한 것은 그래서였다. 철학자들을 무색하게 만들 정도로 심오한 윤리적 역설이었다.
왕은철 문학평론가·전북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