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청년, 꼰대를 말하다]
우리가 겪은 꼰대는 구체적이고, 실체가 있다. ‘워커홀릭’을 의무로 알고, ‘열정페이’를 강요한다. 허접한 조언을 ‘꿀팁’으로 착각한다. 세상이 바뀌었다. 우리는 ‘훈수 마니아’를 거부한다. 회사 분위기가 진지하면 의심해 보라. 십중팔구 꼰대와 대화하는 대신 입을 닫고 사는 게 편해서다. 다짜고짜 반말도 괴롭지만 자식 같아서, 손주 같아서라는 말도 불편하다. 늘 배려 없는 조언과 위로가 빠지지 않는다. 직장이든 학교든 여성은 꼰대 권력의 타깃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NO(노)라고 외치지 못했다. 그러자 꼰대는 문화가 됐고, 우리의 일상을 침범했다.
그래도 이해가 안 되면 다시 말한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야지….’ 꼰대문화를 상징하는 표현이다. 곰곰이 생각해 보시라. ‘친절한’ 조언이 우리에게 얼마나 폭력적인지. 여기서도 감이 안 오면…. 단도직입적으로 밝힌다. “제발 말도 없이 내 설렁탕 그릇에 깍두기 국물 좀 들이붓지 말라.”
물론 우리가 모르는 건 아니다. 꼰대들도 생각보다 여유롭지 않다는 걸. 세상을 전부 그대들이 망쳤다는 것도 아니다. 물론 세상 망가지는 걸 방관한 것에 유감은 있다. 하지만 기꺼이 망가진 세상을 함께 세울 용의가 있다.
서로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대화를 시작할 때다. 그에 앞서 지금은 먼저 들어줬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제까지 너무 많이 듣기만 했다. 이번에는 먼저 귀를 열고 듣길 바란다. 공존을 위한 대화는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 세대는 제대로 꼰대가 될 기회조차 없다. 꼰대는 자부심을 먹고 자라고, 자부심은 성취를 바탕으로 자란다. 성취가 없어 자부심도 없고, 꼰대가 될 기회도 봉쇄당한 것이다. 100년 동안 저축해도 집 한 채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없다. 우리의 분노는 그래서 구조적이며, 경제적이고, 가치 지향적이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리 대단한 게 아니다. 서로 존중하고 배려해 주세요, 함부로 간섭하지 마세요, 반말하지 마세요, 지하철에서 다리 벌리지 마세요, 자식 같다 손주 같다는 말 좀 그만하세요…. 한 문장으로 줄이면 “상식에 맞게 행동하세요”일 것이다. 우리 역시 자유로울 수 없다. 꼰대를 비난하는 우리도 언젠가 꼰대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말하려는 독립은 꼰대로부터의 도피만 의미하는 게 아니다. 우리 안에서 자라는 꼰대에 자양분을 주지 않겠다는 약속이다. 그게 우리가 꼰대로부터의 독립을 선언하는 목적이다.
1919년 3월 1일, 태화관에 모인 33인의 민족대표는 이렇게 시작하는 선언문을 읽었다.
2020년 1월 1일, 33인의 청년이 다시 쓴 꼰대독립선언서는 이렇게 시작해야 한다.
“오등은… 괜찮아요! 몇 등을 해도 괜찮아요. 등수는 상관없어요. 숫자만 보는 꼰대들은 신경 쓰지 말아요. 남의 기준은 남에게 돌려줍시다. 꼰대를 만나면 ‘그쪽과는 상관없는 일인데요’라고 또박또박 말합시다. ‘그런 말씀은 상당히 불쾌하네요’라고 답장해도 괜찮아요.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할 필요 없어요. 어차피 세상은 그런 거라고 말할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우리가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에요. 아! 이런 말조차 당신에게 주제넘게 들리나요? 그렇다면 미안합니다. 우리 모두 ‘미안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돼요. 상식 있는 세상에서 함께 만나요.”
※꼰대독립선언서는 청년 33인의 심층 인터뷰를 바탕으로 작가 김홍 씨와 본보 특별취재팀이 함께 작성했다. 배경 사진은 청년 33인의 얼굴이다. 이들은 모두 이름과 얼굴 공개에 동의했다.
특별취재팀(가나다순)
김소영 김수연 남건우 신규진 유성열 이윤태 조윤경 한성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