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新목민심서-공직사회 뿌리부터 바꾸자] 혁신안 내랬더니 민원사항 내… 부처간 정보 공유 제안은 탈락 국민 62% “공무원 무사안일”… 공무원은 “그렇다” 17% 그쳐
《정부는 지난해 ‘적극행정 운영규정’을 제정했다. 불합리한 규제를 개선하는 등 창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일하라는 취지다. 면책 조항까지 뒀다. 연말에 공직사회 개선 정도를 설문했다. 적극행정은 9개 분야 중 꼴찌였다. 정권마다 적극행정을 외치지만 제자리걸음이다. 공무원들도 혁신의 필요성을 알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정치권이, 때로는 감사원이, 때로는 관치의 유산이 혁신의 발목을 잡는다. 공무원이 타성에 젖으면 민간은 규제에 질식당한다. 공무원이 신바람 나게 일하면 민간도 신바람 나게 전진한다. 공직사회가 뿌리부터 바뀌어야 한다. 혁신의 걸림돌도 뽑아내 줘야 한다. 동아일보가 ‘2020 新목민심서’ 연재를 시작하는 이유다. 》
A: ‘공무원 청원제’를 도입해 정책 현안을 적극 해결하자.
B: 공무원증에 결제 기능을 넣어 구내식당에서 쓰게 하자.
행정안전부가 지난해 9, 10월 43개 정부 부처의 주니어 공무원에게 정부 혁신을 위한 아이디어를 내보라고 하니 이런 제안들이 나왔다. 제안 A는 실무자의 권한 밖에 있는 민원을 해소하기 위해 공무원 5000명 이상이 청원에 참여하면 협의체를 구성해 해당 사안을 반드시 풀게 하자는 것. 공직사회의 복지부동을 극복하자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작년 11월 상을 준 것은 식당 밥값 계산을 편리하게 하자는 제안 B였다.
부처 간 칸막이를 뛰어넘자는 ‘공무원 정보공유제도’, 부실 인수인계 문제를 풀려는 ‘인수인계법’도 모두 탈락했다. 수상권인 6위 안에 든 아이디어는 ‘출장 정산을 간소하게 하자’ 등 공무원 복지나 편의와 관련된 게 많았다.
익명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도 이런 인식 차가 읽혔다. 한 공무원은 “‘권력 지향+서울대 경제학과’면 기획재정부에 가거나, 서울서 일하려면 금융위원회에 가라”고 했다. 중앙부처 대신 업무가 상대적으로 느슨한 처, 청, 위원회로 가야 한다는 말도 있었다.
공직사회가 태생적으로 ‘갓(god)9급’(신이 내린 9급 공무원)에 안주하는 건 아니다. 행정연구원이 공무원을 대상으로 무사안일과 복지부동 원인을 묻자 ‘보상 미흡’ ‘일이 잘못되면 책임져야 해서’ ‘자율성 부족’ 순으로 나왔다. 문명재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는 “혁신 아이디어마저 절차와 관행을 따지며 ‘귀찮은 업무’가 돼버리는 문화에서는 복지부동이 체질화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홍수영 gaea@donga.com·임보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