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2월31일 발생한 이라크 시위대의 바그다드 미국대사관 습격 사건으로 카타이브헤즈볼라(KH)를 비롯한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아파 민병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이번 시위는 지난해 12월27일 미국이 이라크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 중 하나로 꼽히는 KH를 이라크 정부의 반대에도 공격하면서 촉발됐다. 현지에선 미군의 KH 공격으로 ‘미-이란 대리전’과 ‘미국의 주권침해’ 우려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 IS 퇴치에 앞장서며 영향력 키우고 국민지지도 크게 받아
이라크의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들은 2003년 미국의 침공으로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부터 중앙정부의 힘이 약해진 이라크에서 힘을 키워왔다. 일부 지역에서는 사실상 정부를 대신할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당시 이라크 정부는 아예 친이란 시아파 계열 민병대들을 중심으로 ‘인민동원군(PMF·아랍어로 하시드 알사비)’이란 조직을 구축해 정부군과 함께 IS와의 전쟁에 나서게 하는 전략도 구사했다. 바로 이 같은 특성 때문에 미국의 KH에 대한 공격을 일반인과 이라크 정부가 동시에 주권침해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것이다.
KH 공격 사태가 터진 뒤 이라크 외무부는 성명을 통해 “이번 공격은 이라크 주권에 대한 침해다. 하시드 알사비는 이라크의 국가 군대고, 이라크군 조직의 일부로 이라크군 총사령관의 지휘를 받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 이라크내 수니파와 미국과 친미 국가들은 ‘이란의 대리인’이라고 비판 커
하지만 이라크 국민 중 약 35%인 수니파는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들을 정치·사회 혼란을 야기하는 세력으로 본다. 이라크보다 이란에 충성하며 이란의 대리인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미국 역시 KH의 최고지도자인 아부 마흐디 알-무한디스 등 상당수 민병대 지도자들을 테러리스트로 지정할 정도로 친이란 시아파 민병대의 영향력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카타르 아랍조사정책연구원의 마르완 카발란 정책분석센터장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에는 미국이 이란의 핵개발에 초점을 맞췄지만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의 지역 영향력 확장 문제도 핵개발 못지않게 우려하고 있다”며 “기회가 될 때마다 민병대를 통한 이란의 영향력 확장을 최대한 약화시키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 헤즈볼라 때문에 깊어진 친이란 민병대에 대한 우려
일각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반이란 국가들의 친이란 민병대에 대한 두려움이 레바논의 헤즈볼라의 성장 과정을 통해 더욱 커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란 혁명수비대의 지원으로 성장해온 레바논의 무장정파 헤즈볼라는 민병대는 물론이고 정치단체의 기능까지 하며 레바논 사회에 큰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현재도 레바논 정치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집단으로 여겨진다.
특히 헤즈볼라는 2006년 34일간 이스라엘과 전쟁을 벌일 때 이스라엘은 물론이고 주변국들을 놀라게 할 만한 역량을 보였다. 당시 헤즈볼라는 혁명수비대로부터 지원받은 수백 대의 로켓을 발사했고 이스라엘인 160여 명이 숨졌다. 이스라엘 내부적으로도 추가 충돌은 무조건 피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제기됐을 정도다.
카이로=이세형 특파원 turt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