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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美 21차례 언급하며 맹비난… 사실상 ‘병진노선’ 회귀

입력 | 2020-01-02 03:00:00

전원회의서 “정면돌파전” 강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해 말 진행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무표정한 얼굴로 박수를 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은 1일 김 위원장이 “허리띠를 졸라매더라도 기어이 자력부강 자력번영해 나라의 존엄을 지키는 것이 우리의 혁명 신념”이라고 강조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북한이 사실상 새로운 ‘고난의 행군’을 예고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조선중앙TV 화면 캡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나흘간의 당 중앙위원회 제7기 5차 전원회의를 끝내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향해 ‘정면 돌파’를 선언했다. 육성 신년사 대신 노동당 전원회의 결과 보고를 통해 핵·미사일 도발을 재개할 수 있으며 곧 전략무기를 선보일 수 있음을 예고했다. 대북제재로 인한 경제난은 자력갱생으로 극복하겠다고 밝혔다. 사실상 1년 8개월 만에 ‘병진노선’(핵과 경제 동시 개발)으로 되돌아가겠다며 2020년 ‘핵 도박’의 서막을 알린 것이다.


○ 김정은, 미국 21차례 언급하며 병진노선 사실상 회귀 선언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28일부터 31일까지 진행된 전원회의에서 “(핵, 경제 동시 개발의) 병진의 길을 걸을 때나 경제건설 총력집중 투쟁을 벌이는 지금이나 전혀 달라진 것이 없는 현실에서 미래의 안전을 포기할 수 없다”고 말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1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가 철회되고 조선반도에 항구적이며 공고한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 국가 안전을 위한 필수적이고 선결적인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 줄기차게 진행해 나가겠다”고 했다.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은 “2년 만에 전략노선을 재수정하는 데 대한 정치적 부담감과 대외적 파장을 고려해 병진노선 회귀를 공식 선언하진 않았지만 실질적으로 회귀했다”고 분석했다.

북한 매체가 이날 전한 전원회의 보도엔 미국이 총 21차례 언급됐다. 비핵화 대화 국면에서 접었던 병진노선을 되살리게 한 원인을 미국에 돌리는 대목도 다수 등장했다. 김 위원장은 “이제껏 우리 인민이 당한 고통과 억제된 발전의 대가를 깨끗이 다 받아내기 위한 충격적인 실제 행동에로 넘어갈 것”이라고 경고했다. ‘충격적인 실제 행동’을 두고 대다수 안보 전문가는 시기의 문제일 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고강도 도발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사실상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유예) 공약 파기에 가까워졌다는 분석이 많다. 남주홍 전 국정원 1차장은 “모라토리엄 파기 선언의 준비는 다 된 것 같다”며 “당장 모라토리엄을 깬다는 건 아니지만 이를 협상 카드로 삼아 미국을 흔들고 말을 듣지 않으면 내 길을 가겠다는 게 북한의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 北, 비핵화 협상 접고 핵군축 협상 나서나

김 위원장은 미국의 대북 적대시 정책이 지속될 경우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는 영원히 없을 것”이라고 했다. 대북제재를 유지하거나 한미 연합 군사훈련을 실시하면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는 꿈도 꾸지 말라는 것이다. 북한은 이미 외무성 관료들의 입을 통해 비핵화는 협상 테이블에서 내려졌다고 거듭 밝힌 바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북한이 애초에 생각했던 핵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으로 봐야 한다”며 “미국이 원하는 로드맵에 따라 비핵화의 최종 단계를 정하는 협상은 하지 않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다만, 김 위원장이 미국의 입장에 따라 전략도발과 대미 협상 양 갈래 길을 갈 수 있다고 밝힌 것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의 억제력 강화의 폭과 심도는 미국의 향후 입장에 따라 상향 조정될 것”이라고 했고 영문판에서는 더 구체적으로 ‘적절히 조정(properly coordinate)’으로 표기해 메시지 수위도 조절했다. “목숨처럼 지켜온 존엄을 팔 수는 없다”며 제재 해제에 더는 기댈 필요가 없다면서 동시에 “경제 건설에 유리한 대외적 환경이 절실히 필요한 것은 사실”이라고 한 것도 미국과의 대화판을 유지할 명분으로 읽힌다. 최강 아산정책연구원 부원장은 “북한은 지금 미국을 상대로 투트랙 게임을 하고 있다. 지금 판을 깨면 불리하다고 판단해 단정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은 것”이라고 평가했다.

신나리 journari@donga.com·한기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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