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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도연 칼럼]수능의 존재 이유를 고민할 때다

입력 | 2020-01-02 03:00:00

좋은 미래는 좋은 인재가 핵심, 세상 변하면 교육제도도 바뀌어야
아직도 1∼5번 중 답 고르는 시험… 상상력 틀어막고 창의성 갉아먹어
근본적인 성찰과 혁신 시작해야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

2020년이다. 무심한 세월을 이렇게 한 해씩 나누어 헤아리는 것은 인간의 지혜다. 그 덕에 우리는 과거를 털어 버리고 새로운 삶을 다시 모색하곤 한다. 사실 시간의 흐름을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인간만이 지닌 능력일 것이다. 여하튼 2020이란 반복되는 숫자는 상서롭게 느껴진다. 대한민국 사회가 금년에는 안팎으로 좀 더 융성하고 화목하길 기원한다.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날들을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

사람들은 누구나 현재보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며, 그런 기대만으로도 행복하게 오늘의 어려움을 이겨낸다. 그렇기에 사회나 조직의 지도자는 물론이고, 구성원 모두는 밝은 미래를 설계하는 일에 더 많은 정성을 쏟아야 한다. 과거를 캐는 일보다 훨씬 소중한 것은 미래를 여는 일이다. 그러면 국가적으로 더 나은 미래의 문을 여는 핵심 열쇠는 무엇일까? 이는 당연히 좋은 교육을 통한 훌륭한 인재 양성이다. 미래사회에 적합한 인재를 길러야 한다.

오늘의 학생들이 살아갈 미래 모습을 구체적으로 짐작하는 일은 물론 불가능하지만, 그러나 이미 실현되고 있는 변화로부터 미래는 초(超)장수, 초연결, 그리고 초지식 사회가 될 것이 확실하다. 우리 젊은이들은 적어도 120세까지 살아갈 것이며, 이를 위해 80세까지는 사회 경제 활동을 할 것이다. 그리고 국경과 문화의 장벽 없이 인류 모두가 서로 연결된 세계에서, 지식과 정보의 쓰나미를 헤쳐가며 살아갈 것이다.

빠르게 바뀌어 갈 미래에는 계속적으로 학습하는 인재만이 경쟁력을 지닐 수 있기에, 교육은 이제 배운 사람보다 배울 사람을 육성하는 시스템으로 변해야 한다. 그리고 과거의 획일적 산업시대와는 다르게, 남과 다른 사고력, 즉 창의력 배양이 교육의 최상 목표가 되어야 한다. 지식과 정보의 합리성과 경중을 판단할 수 있는 비판적 사고력과 폭넓은 시각을 길러주어야 하며, 아울러 사회에서 다른 사람들과 섞여 살면서 협력하고 배려하는 인재로 키워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 현행 교육 시스템은 과거 선진국을 좇는 추격형 사회에서는 지극히 유용했으나 이제는 상당 부분이 혁신의 대상이다. 그러나 교육은 혁명의 대상이 아니다. 점진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하므로, 당연히 정권을 넘어서는 작업이 되어야 한다. 여하튼 바로 오늘 이 땅에 태어난 생명들, 즉 주민등록번호가 ‘200102’로 시작되는 아이들부터라도 지금과는 다른 교육 시스템에서 성장했으면 좋겠다.

그러면 실타래처럼 꼬여 있는 우리 교육에서 가장 먼저 풀어야 할 매듭은 무엇일까? 어떤 조직이라도 구성원들에게 절대적인 일은 평가를 잘 받는 것이며, 마찬가지로 학생에게는 학교 시험을 잘 치르는 것이다. 즉, 시험은 교육을 지배하는 절대적 존재인데 대학 입학에 모든 것을 거는 우리 사회에서는 결국 대학수학능력시험에 교육 전체가 매달려 있는 셈이다. 점수로 주어지는 평가 결과에 수긍할 수밖에 없기에 이를 공정하다고 믿지만, 그러나 여기에도 불공정은 개재되어 있다. 좋은 수능 성적을 위해서는 값비싼 사교육이 효과적인데 이것이 어떻게 공정하기만 한 일인가?

수능 전형 입학 학생 수의 비율을 올리고 내리는 일은 각 대학에 자율로 맡기면 되는 일이다. 정부는 그보다 훨씬 중요한 문제, 즉 현재의 수능이 우리 교육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본질적이고 진지한 고민을 해야 한다. 오로지 1점이라도 더 받기 위해 제2외국어를 치르는 수험생 네 명 중 세 명은 로또 과목으로 불리는 아랍어를 택하고 있다. 결국 수만 명의 학생이 미래에 별로 필요치 않은 것을 알면서도 꽃 같은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심각한 사실은 다섯 개 보기 중 정답 하나를 고르는 수능 훈련으로 우리 학생들의 창의성은 고갈되고 있다는 점이다. 서술식 문항을 한 해에 5%씩 10년에 걸친 계획으로 늘려서, 궁극적으로 주관식과 객관식 문항이 절반씩 되면 바람직할 것 같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대구교육청과 제주교육청이 인터내셔널 바칼로레아(IB)를 시범 도입하면서 초중등 교육에서 논술형 혹은 서술형 평가를 추구하는 것은 좋은 방향이다. 많은 학교로 확산되고 또 새로운 교육 시스템이 정착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우리의 미래를 위해 꼭 가야 할 길로 믿는다. 2020년에는 교육이 밝은 미래를 여는 변화의 길로 들어서길 기원한다.
 
김도연 객원논설위원·서울대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