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 대형마트 자율포장대에서 시민들이 테이프를 붙이지 않은 채 박스에 물건을 담고 있다.
사지원 정책사회부 기자
1일 서울 동작구의 한 대형마트. 계산대에서 기자가 큰 장바구니를 사겠다고 하자 점원이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대형마트들은 환경부와 지난해 8월 맺은 자율협약에 따라 1일부터 자율포장대에서 종이상자를 포장할 테이프와 플라스틱 끈을 없앴다. 앞서 마트들은 소비자 불편에 대비해 50L 안팎의 대용량 장바구니를 빌려주거나 팔겠다고 밝혀왔다. 하지만 협약을 맺은 뒤 4개월이 지나도록 현장의 대비는 부족했다.
제도가 잘 정착된다면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일 수 있다. 제주도는 2016년 9월 마트들과 협약해 자율포장대에서 종이상자 등을 모두 치우고, 굳이 원하는 소비자는 상자를 사도록 했다. 처음에는 소비자들이 반발했지만 이제는 상자를 쓰는 사람이 드물다. 환경부는 이 사례를 전국에 확대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테이프와 끈이 사라진 첫날, 현장에서는 아직 거부감을 보이는 시민이 많았다. 서울 중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물건을 산 70대 남성은 잠시 자리를 비운 청소 직원의 카트에서 테이프를 꺼내 종이상자를 감싸려 했다. 다른 직원이 이를 말리자 인 씨는 “이럴 거면 상자까지 다 치워야 하는 것 아니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예 집에서 테이프를 가져오거나 마트에서 테이프를 사서 쓰는 사람도 있었다. 상자가 터질까 봐 상자 한 개에 담아도 될 물건을 두 개에 나눠 담는 사람도 보였다.
이런 상황을 막으려면 충분한 준비가 필수다. 마트는 소비자들에게 대용량 장바구니를 쓰도록 안내하고 또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환경부도 자율협약이라고 마트에만 맡겨두면 안 된다. 시민들이 이 제도의 필요성에 공감하고 동참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
불편이나 부담이 따르는 변화는 진통을 거치기 마련이다. 1995년 도입된 쓰레기 종량제 역시 도입 당시에는 반발이 심했지만 지금은 가장 성공한 환경 정책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단, 얼마나 잘 준비했느냐가 제도의 실패와 성공을 가른다.
서울 서초구의 한 대형마트에서 만난 김모 씨(60·여)는 “테이프 붙은 종이상자가 재활용을 방해한다니 약간의 불편함은 감수해야 한다”며 미리 준비한 장바구니 속에 물건을 가득 담았다. 김 씨 같은 시민이 많아지도록 환경부와 마트도 더 움직여야 한다.
사지원 정책사회부 기자 4g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