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이란 시위대 美대사관 습격 파장 사태 악화땐 4000명 추가 파병… 트럼프 “美피해 이란에 모든 책임” 하메네이 “당신은 아무것도 못해” 2012년 리비아 벵가지 테러땐 美대사 숨져 오바마 궁지 몰려
이라크 내 친(親)이란 시위대가 바그다드 미국대사관을 습격한 것에 맞서 미국이 특수진압부대를 이라크에 파견하는 등 강경 대응하면서 중동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올해 11월 대선을 앞두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으로서는 큰 악재를 만났다.
시위대는 지난해 12월 31일 미국대사관에 진입한 데 이어 1일에도 대사관 진입을 시도하면서 돌과 화염병을 던졌다. 시위대가 불어나자 대사관을 지키는 미 해병대원들이 최루탄을 발사했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마크 에스퍼 미 국방장관은 습격 당일인 지난해 12월 31일 성명을 내고 “육군 82공수사단 신속대응부대(IRF) 750명의 파병을 승인했다. 즉시 이라크에 배치하고 수일 내에 추가 병력도 투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IRF는 강도 높은 폭동을 전문적으로 진압하는 특수부대다. 폭스뉴스는 대사관 습격 직후 82공수사단 내 4000명 규모의 낙하산 부대원이 “수일 내에 투입될 수 있도록 군장을 챙기라”는 명령을 받았다고 전했다. 국방부는 아파치 헬기 2대와 해병대 100명도 급파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번 사건이 ‘제2의 벵가지 사태’로 번질까 우려하고 있다. 2012년 9월 리비아 2대 도시 벵가지에서 무장 시위대가 무슬림 모독을 이유로 미 영사관을 공격해 크리스토퍼 스티븐스 당시 주리비아 미국 대사 등 총 4명이 숨졌다. 이 사건은 미국에 엄청난 충격을 줬고,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외교 참사’로 각인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 캠페인에서 벵가지 사태 당시 국무장관이었던 힐러리 클린턴 후보를 향해 “미 대사도 보호하지 못한 사람이 대통령이 되면 안 된다”고 공격했다. 이번에는 자신이 똑같은 논리로 공격받을 처지에 놓이자 서둘러 대응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온다.
하지만 군사 대응이 현지의 반미 감정만 부추겨 이라크 내 이란 영향력 확대를 막으려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에는 도움이 안 될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미국대사관이 위치한 바그다드 안전지대(그린존)는 정부청사, 국회의사당, 외국 공관 등이 밀집해 평소에도 경계가 삼엄하다. 그런데도 친이란 시위대가 쉽게 대사관에 접근한 것은 이라크 측이 사실상 이를 묵인했기 때문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알자지라는 “대사관 습격은 이라크인들이 미국의 영향력을 거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2003년 이라크전쟁 후 미국이 수조 달러를 쏟아부었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지난해 10월부터 반정부 시위가 이어지고 있는 이라크는 이번 사건으로 혼란이 가중될 것으로 전망된다.
워싱턴=이정은 lightee@donga.com / 카이로=이세형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