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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당 시무식은 가라”… CEO와 커피 덕담-유튜브 생중계

입력 | 2020-01-03 03:00:00

기업들 ‘파격 시무식’ 눈길




2일 우아한형제들 직원들이 회의실에 모여 다른 층에서 열리고 있는 김봉진 대표의 시무식 연설을 실시간 중계 방송을 통해 듣고 있다. 우아한형제들 제공

“어느 때보다 색다르고, 간결하다.”

4대 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새해 첫 출근 날인 2일 진행된 주요 기업들의 새로운 시무식 풍경을 이렇게 평가했다. 임직원들이 강당에 모여 최고경영자(CEO)의 신년사 발표를 듣기만 했던 과거 시무식과 달리 토론회, 모바일 생중계 등 파격을 시도한 기업들이 눈에 띄게 늘었다.

특히 SK그룹은 1953년 창립 이후 가장 새로운 시무식을 열었다는 평이다. 최태원 회장은 신년사를 내지 않고 일반 시민과 고객, 신입사원 등 6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SK가 추진하는 사업에 대한 이들의 의견을 들어보는 자리를 마련했다. 지난해 최 회장과 주요 계열사 CEO 5명이 좌담 형식으로 토론회를 한 데 이어 시무식의 틀을 또 한번 깬 것이다.

서울 광진구 그랜드워커힐호텔에서 열린 이날 시무식에 참석한 사회적 기업 루트임팩트의 허재형 대표는 “SK가 여러 분야에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리더를 양성하고 이들이 협업할 수 있는 영역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최 회장을 비롯해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최창원 SK디스커버리 부회장 등 주요 경영진은 좌석에서 참석자들의 발언을 조용히 경청했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올해 처음으로 행사 표현을 시무식 대신 ‘신년회’로 바꾸고 내용을 모바일로 생중계했다. 정의선 수석부회장은 지난해와 다르게 연설대 없이 홀로 무대에 올라 사업 이야기에 앞서 “새해 아침에 떡국은 드셨냐”며 안부 인사를 전하는 것으로 신년사를 시작했다. 행사가 끝난 뒤에는 참석한 직원들과 웃으며 악수를 나누기도 했다.

아예 시무식을 열지 않은 기업도 늘었다. LG그룹이 대표적이다. LG는 1987년 서울 영등포구 LG트윈타워 준공 후 지하 대강당에서만 진행했던 그룹 시무식을 올해 처음으로 폐지했다. 그 대신 구광모 ㈜LG 대표의 신년사 동영상을 전 세계 25만 명 임직원들에게 e메일로 전달했다. 동영상에는 글로벌 구성원을 위해 영어와 중국어 자막도 담았다. LG그룹 관계자는 “구 대표 본인부터 형식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CJ그룹도 예년과 다르게 별도의 시무식을 열지 않고 손경식 회장의 신년사를 사내 방송을 통해 방영하는 것으로 갈음했다.

기업 조직문화를 앞장서서 혁신했던 정보기술(IT) 업계에서는 파격이 이어졌다. 우아한형제들(배달의민족)은 김봉진 대표가 서울 송파구 본사 카페에서 임직원 200여 명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커피를 마시는 가운데 대화하는 형태로 신년사를 발표했다. 회사는 김 대표의 신년사를 유튜브 채널을 통해 중계해 참석하지 않은 임직원도 들을 수 있도록 했다. 안연주 피플팀장은 “CEO 신년사를 이렇게 편한 마음으로 듣는 기업은 흔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같은 날 야놀자는 푸드트럭을 빌려 임직원들에게 차와 쿠키를 대접하는 것으로 시무식을 갈음했다. 야놀자 제공

숙박 예약 플랫폼 업체 야놀자는 푸드트럭을 빌려 임직원들이 다과를 즐기면서 경영진과 덕담을 주고받는 것으로 시무식을 대체했다. 엔씨소프트 등 일부 대형 게임사는 아예 상당수 임직원이 새해 첫 평일에 자리를 비웠다. 연말까지 게임 관리를 위해 집중적으로 근무한 직원들이 장기 휴가를 떠났기 때문에 시무식도 열지 않은 것이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영 환경이 1년이 아니라 1일 단위로 바뀌는 비상 상황인 만큼 기업들이 효율적이고 간결한 시무식을 선호하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지민구 warum@donga.com·신무경·임현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