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일년을, 시간으로 쪼개는 삶 새해마다 나의 계획을 묻는 사람들, 하지만 삶의 대부분은 무계획이었다 그보다 중요한 건 가슴에 품은 ‘꿈’… 좀 더디고 느려도, 그게 사는 이유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
이 즈음이 되면 늘 오고 가는 질문이 있다. ‘신년 계획이 있다면요?’ ‘지난 한 해 후회되는 게 있나요?’ 고백하자면 이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늘 머쓱했다.
진심을 말하자면 그런 건 항상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 진정성보다는 모범답안이 필요한 상황에는 운동을 더 해보려고 한다든지, 엄마에게 전화를 자주 못 한 게 후회된다는 등의 답을 해왔지만. 살면서 계획이란 걸 해본 때라고는 초등학교 때 원을 그려 시간표를 만들어볼 때 말고는 없었다. 그때도 어떤 원대한 목표가 있다기보다는 하루를 케이크처럼 나누어 할 일을 정한다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놀이처럼 느껴져 재미가 있었을 뿐이지 ‘계획을 세운다’는 말이 가진 원대한 의미와는 거리가 멀었다. 20대는 계획이 없는 내가 가장 위축되었던 때라고 볼 수 있다. 단지 직장을 구해 경제적으로 독립하고 싶다는 것 외에는 이렇다 할 계획이 없던 나는, 툭하면 ‘너는 인생에 그렇게 계획이 없냐’는 핀잔을 받기 일쑤였다.
철저한 계획이 있는 삶의 미덕은 분명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에 따르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감과 패배감은 받기 싫은 부록처럼 딸려온다. 그리고 그런 감정들은 마치 가랑비처럼, 치명타는 못 되어도 우리의 마음에 자잘한 생채기를 남기며 자신감을 갉아먹는다.
시간의 개념조차 없던 과거에 비해 현대 기술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예전 같으면 한 달이 넘게 걸릴 일을 한 시간도 안 걸려 처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천 리 길을 달려 전해야 했던 소식은 손끝으로 전송할 수 있다. 그러나 이토록 많은 기술로 압축된 시간 덕에, 우리는 과연 여유로워졌는지 생각해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실존하지 않는 시간의 개념을 세우는 바람에 우리는 늘 쫓기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계획은 그런 실체 없는 시간에 기대어 세우는 허상이 아닐까. 나이 앞자리가 바뀌는 것에 대한 공포 또한, 그 나이가 되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박 탓이 아닐까.
2020년. 특이한 패턴의 숫자 배열 때문인지 옛날 만화나 영화 속에서 상징적으로 거론되었던 바로 그해. 자동차가 날아다니거나 인류의 절반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러데이션처럼 조금씩 발전해 온 나날들이었다. 시간을 기준으로 삼는 상상이나 계획은, 결국엔 허상 위에 세운 기둥이다. 어감 때문인지 ‘계획’이란 말은 이성적이고 구체성을 띠며 ‘꿈’은 그 반대 같지만, 내 경험상 실제로 이 둘이 인생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력은 후자가 훨씬 더 크게 갖고 있다. 꿈은 마음에 담고 사는 분명한 것이고, 계획은 머리로 세우는 불분명한 것이라는 게 나의 결론이다.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되, 인생은 대충 살아도 크게 나쁠 건 없다. 그러니 계획이 없어 불안한 자들은 다만 누가 뭐라 해도 근사한 꿈을 갖길 바란다. 계획과 꿈을 혼동하지 않길 바란다. 어차피 삶에는 끝이 있을 뿐 아무도 타이머를 잴 수 없으니까.
김이나 객원논설위원·작사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