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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이에서 ‘귀한 몸’ 된 물메기[김창일의 갯마을 탐구]〈38〉

입력 | 2020-01-03 03:00:00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

그물에 걸려 올라오면 바닷물에 되던졌던 물고기. 떨어지면서 텀벙거린다 하여 ‘물텀벙이’라고도 했다. 아귀, 삼세기, 물메기 등은 생김새가 흉측하고 살이 물컹거려 잘 먹지 않았다. 남해안의 창선도가 고향인 필자는 물메기에 대한 유년의 기억이 남다르다. 겨울철, 선창가에 쌓여 있는 물메기 알은 동네 개구쟁이들의 훌륭한 간식거리였다. 물메기는 겨울에 가장 흔한 생선이었으나 판로가 변변찮았다. 어민들은 너무 많이 잡혀 처치 곤란할 때면 이웃집에 나눠주거나 손질해서 건조시켰다. 남아도는 알은 아이들이 차지했다. 뛰놀다가 출출해질 때면 주먹 크기의 알을 손에 들고 다니며 먹었다. 베어 물면 오도독오도독 터지면서 짭조름한 바다향이 입안 가득 퍼졌다.


물메기가 잡히기 시작하는 12월이면 남해안의 섬마을은 집집마다 물메기탕을 끓였다. 무와 대파, 마늘과 소금만으로 끓여낸 맑은 물메기탕은 특유의 담백한 맛을 냈다. 국물에 살이 풀어져 젓가락으로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부드럽다. 씹는다기보다 마신다는 표현이 옳을 것이다.

1970,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바닷가 사람들 외에는 잘 먹지 않던 물메기탕이 겨울 별미로 각광받고 있다. 여러 종이 있지만 일반에는 그런 구분 없이 ‘물메기’(남해), ‘곰치’(동해), ‘물잠뱅이’(서해)로 알려져 있다. 남해에서는 커다란 머리와 넓적한 몸뚱이가 메기를 닮아서 물메기라 부르고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는 둔해 보이는 몸짓이 곰 같다 하여 곰치라 한다. 물메기라 불리는 물고기는 쏨뱅이목 꼼칫과다. 꼼칫과 어류는 세계에 190여 종이 알려져 있고 한국에는 꼼치, 미거지, 아가씨물메기, 물메기 등 여덟 종이 서식한다. 남해와 서해에는 꼼치가 잡히고 미거지, 아가씨물메기, 물메기는 동해에서 주로 어획된다. 따라서 남해·서해안은 꼼치가 물메기탕의 재료가 되고 동해안은 미거지, 아가씨물메기, 물메기를 따로 구분하지 않고 탕의 재료로 사용한다. 남해안과 서해안에서는 주로 맑은 탕을 해서 먹고 동해안에서는 김치와 고춧가루 등을 넣어 먹는다.


깊은 바다에 살던 꼼치는 산란하기 위해 겨울에 연안으로 몰려온다. 올겨울은 수온 상승으로 최악의 어획난을 겪고 있다. 꼼치 가격이 천정부지로 뛰었다. 경남도와 국립수산과학원은 매년 1000만 마리 이상의 치어를 방류하고 있지만 어획량이 매년 줄고 있다. 위판가 기준으로 2017년에 한 마리에 1만 원 내외이던 것이 지난해 두 배 가까이 뛰었고 올해는 더 오르는 중이다. 시장가격은 위판가의 곱절 정도다.

물메기탕은 연말연시 잦은 술자리에 지친 애주가들의 겨울철 진객이다. 정약전이 쓴 자산어보에도 ‘물메기는 고기 살은 매우 연하고 뼈가 무르다. 곧잘 술병을 고친다’고 했다. 조선시대에도 바닷가 사람들은 해장국으로 물메기탕을 즐겼던 듯하다. 찾는 사람은 많아지고 어획량은 줄어드니 못생겨서 괄시받던 생선이 귀하디귀한 몸이 되었다. 너무나 흔했던 일상의 음식이 이런 대접을 받는 날이 올 줄이야. 이제 물텀벙이라는 별칭은 옛말이 되었다.

김창일 국립민속박물관 학예연구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