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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 독립운동 시작된 한인촌 파차파 캠프 잊지말길”

입력 | 2020-01-04 03:00:00

[2019 3·1운동 임정 100년, 2020 동아일보 창간 100년]
도산 안창호 막내아들 안필영
“정성껏 오렌지 따는 것도 애국”
도산, 1904년 LA인근 소도시 이주… 하와이 거쳐온 동포들 불러모아
“캘리포니아 안창호의 날 결의… 아버지 유산은 韓美에 가치 있어”




로스앤젤레스 한인타운에 있는 도산 안창호 우체국. 내부에 도산 초상화와 함께 그의 독립운동이 소개돼 있다. 로스앤젤레스=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1919년 대한민국 임시정부 내무총장 겸 국무총리 서리를 맡기 전까지 미주 한인사회를 이끈 도산 안창호(1878∼1938·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의 흔적은 미 서부 곳곳에 남아 있다. 로스앤젤레스 코리아타운의 우체국이 ‘도산 안창호 우체국’으로 명명됐고 그의 이름을 붙인 나들목과 광장도 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 동쪽으로 90km 떨어진 소도시 리버사이드의 시청 앞 광장에도 안창호 동상이 세워져 있다. 리버사이드는 도산이 세운 미국 최초의 한인촌 ‘파차파 캠프’가 있는 곳이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한인친목회와 공립협회를 조직한 도산은 하와이를 거쳐 샌프란시스코에 도착한 한인들을 오렌지농업이 발달한 이곳으로 불러 모았다. 1904년 리버사이드로 이주한 도산은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정성껏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이라며 솔선수범했다. 파차파 캠프는 한인 노동자 수가 최대 300명에 이르러 당시 미주 최대 한인타운이었다.(장태한 ‘파차파 캠프―미국 최초의 한인타운’)

지난해 12월 4일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난 도산의 막내아들 안필영 옹(94·사진)은 파차파 캠프를 잊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차파 캠프는 미국 최초이자 당시 최대 한인사회였을 뿐만 아니라 미주 한인사회에서 독립운동이 시작된 곳”이라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1926년 9월에 태어난 안 옹은 독립운동을 위해 그해 2월 미국을 떠난 아버지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다.

―2018년에 캘리포니아주 하원이 안창호의 날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어떤 의미인가.


“아버지 유산에 관심을 가져주는 것에 매우 감사하고 있다. 아버지의 유산은 한국과 미국에 모두 가치가 있다. 무한한 책임감을 느끼고 아버지 명성에 먹칠하지 않도록 조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가족을 통해 들은 아버지는 어떤 분이셨는가.

“주로 큰형(필립 안)을 통해 들었다. 아버지가 한국 독립을 위해 많은 일을 했다고 들었다. 큰형은 아버지를 매우 존경했고 아버지 유산은 매우 중요한 것이라고 늘 얘기했다.”

―2008년에 어머니(이혜련 여사·1969년 작고)의 훈장을 받기 위해 한국을 방문했는데 어떤 느낌이었나.


“박정희 대통령의 초청으로 1963년에 처음 갔을 때 한국은 빈곤한 나라였고 나무 한 그루 찾아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2008년에 다시 가니 눈부실 정도로 발전한 것을 보고 놀랐다.”

로스앤젤레스=성동기 기자 espri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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