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펭수의 사이다 애드리브에 우리도 깜짝! 앞으로의 행보는”
새해 첫 날 만난 펭수의 전 매니저 전원배 씨(왼쪽)와 박재영 PD.
펭수의 인기에 힘입어 그의 주변인들에게도 관심이 쏠리고 있다. 김명중 EBS 사장은 펭수가 시도 때도 없이 이름을 외치는 바람에 온 국민이 다 아는 유명인사가 됐고, 펭수의 곁을 지키며 동고동락한 매니저들도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다. 이름보다 ‘구매현피’(구 매니저 현 PD)라는 별명으로 더 유명한 박재영(29) PD는 2018년 EBS에 입사해 펭수 매니저를 거쳐 현재 ‘자이언트 펭TV’의 PD가 됐다. 펭수의 가능성을 오디션에서 알아보고 연습생으로 발탁한 이슬예나PD와 더불어 펭수의 성장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본 인물. 전원배(28‧별명 퇴사자, 자이원배) 씨 역시 펭수의 전 매니저다. 박재영 PD와 함께 첫 촬영부터 펭수의 매니저를 맡아 털 관리, 수분공급 등을 책임지며 펭수의 인정을 받는 매니저가 됐다. 현재는 EBS에서 나와 PD 입사시험을 준비하면서 펭수 매니저 조교 등으로 ‘자이언트 펭TV’에 가끔 출연하고 있다. 펭수가 보신각종 타종을 하던 1월 1일, 경기도 일산 EBS 사옥 근처 카페에서 박재영 PD와 전원배 씨를 만나 펭수와 함께한 소감, 그리고 그 자신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펭수와 베스트 커플상을 수상한 박재영 PD (‘자이언트 펭TV’ 에피소드 77편)
전원배 전 매니저(이하 전): 친구들과 함께 새해를 맞이했다. 퇴사의 자유를 누리는 중이다.
-요즘 펭수가 굉장히 바쁜 것으로 알고 있다. 펭수가 피곤해 하지 않나.
박: 펭수는 신기할 정도로 지치지 않는다. 따로 건강관리를 안 해도 될 정도로 체력이 타고난 것 같다. 바쁘긴 하지만 스케줄이 없을 땐 잘 쉬면서 보낸다.
전: 쉴 때도 유튜브나 인스타그램 댓글을 항상 확인하더라.
-요즘 펭수의 인기는 대단하다. 방송사 사장도 만나고 장관도 만난다. 펭수가 뜨고 나서 변했나.
-매니저가 본 펭수의 매력은.
박: 항상 의욕 넘치는 성격이 매력이다.
전: 어떤 관점에서는 펭수의 행동이나 발언이 건방져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펭수가 하면 밉다는 생각이 안 든다. 구독자 분들도 그런 점을 좋아하시는 것 같다.
퇴사 후 ‘펭수 매니저 사관학교’에 조교로 등장한 전원배 씨.
박: 번화가에 나가면 종종 알아보는 분들이 있다. 최근에는 대장 내시경 후 몽롱한 상태에서 같이 사진을 찍자는 요청을 받아 좀 민망했다. 주위 사람들은 놀람 반, 놀림 반이다.
-'매니저’는 펭수가 제작진을 부르는 암호에서 출발했다고 들었다. ‘자이언트 펭TV’의 영상은 비교적 제작진이 등장 비율이 높은 편인데 제작진의 의도인가.
박: 펭수는 펭귄이라 간혹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한두 번 그렇게 등장하다보니 어느 순간 기획안 속에 내 몫의 대사가 있더라. 연출을 직접 보니 펭수 옆에 다른 캐릭터가 있으면 연출이 용이했다. 그래서 나는 원배를 부르고 있다(웃음).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이어가고 있는 펭수.
박: 대부분의 명언은 펭수의 애드리브다.
전: 옆에서 펭수가 하는 말을 들으면 펭수의 통찰력에 놀랄 때가 많다.
박: 물론 대본이 있긴 하지만 펭수에게 제작 의도와 당일 촬영의 흐름을 알려주는 정도로만 사용된다. 나머지 디테일은 매우 유동적이다. 발언 대부분은 펭수가 즉석에서 생각해내는 경우가 많다. 펭수가 경직된 한국사회에서 이방인(펭귄)이라는 점도 ‘사이다’ 발언에 한몫한다. 또한 열 살인 펭수는 그 나이 또래처럼 자유롭게 발언하고 행동한다.
-가장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박: 48번째 에피소드인 ‘명절 잔소리 반대 시위’편(초등학생들이 외모를 지적하고 성적을 묻는 어른들의 잔소리에 반박하는 내용)이 기억에 남는다. 매니저에서 벗어나 PD가 된 뒤로 처음 연출한 작품이라 애착이 간다. 재미 여부를 떠나 평소보다 노력도 많이 들어갔다. 편집도 직접 참여해 평소 톤과 좀 다르게 편집하기도 했다.
전: ‘펭수, 어벤져스 무기 5종 세트 만들다’ 편이 기억에 남는다. 다이X에서 산 저렴한 물품들로 어벤져스들의 무기를 만드는 콘셉트였는데 온갖 곳을 돌아다니며 발품을 많이 팔았다. 준비 당시엔 “이렇게 해도 될까?” 했지만 결과물이 잘 나와서 뿌듯했다.
-요즘 펭수가 콜라보를 많이 한다. 많은 곳에서 제의가 들어오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함께 일할 곳을 어떻게 정하나.
박: 기존 ‘자이언트 펭TV’의 흐름을 깨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펭수와 펭수의 주변 세계관을 존중하는 분들과 같이 일한다. 앞으로도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하는 펭수의 모습을 보실 수 있을 것이다.
-두 분은 언제부터 PD를 꿈꿨나.
박: 제품 디자이너를 꿈꾸며 산업디자인과를 준비하다 갑작스레 대학에서 영상을 전공하게 됐다. 방황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 같다. 대외활동을 하면서 적성을 찾기 위해 노력했다. 아이디어를 내고 결과물을 만드는 일을 좋아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PD 입사시험을 준비하고 EBS에 들어오게 됐다.
전: 처음부터 PD가 돼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아니다. 영화나 TV 프로그램 같은 영상 콘텐츠에 관심은 있었다. 졸업을 앞두고 군대에서 만난 박재영 PD가 올린 조연출 모집공고를 보고 지원하게 됐다. ‘자이언트 펭TV’에서 일하면서 무언가를 만들고 사람들의 반응을 이끌어 내는 PD의 일이 보람 있다고 생각했다. 일할 때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채 준비를 하기 위해 퇴사 후 공부 중이다.
-롤모델이 있나.
박: 없다. 하지만 로알드 달의 유머를 좋아한다. 여덟 살에 그의 전집을 읽으면서 권위 있는 어른들을 비꼬는 신랄한 묘사에 쾌감을 느꼈다. ‘비꼬기 한 번 창의적으로 한다’고 생각하면서 작가의 능력에 질투가 났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학시절 권위와 능력을 내세우는 어른들을 많이 만났다. 그들의 젠체하는 소통방식에 불만을 느꼈다. 개인적으로 그런 사람들보다 평범한 사람들의 가려진 이야기들이 훨씬 파급력 있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전: 어? 그게 펭수 아닌가. 박재영 PD가 롤모델이다(웃음). 나도 정규직 PD가 돼 행복해지고 싶다.
-원배 씨를 비롯해 정규직 PD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박: 원배는 파이팅(웃음). PD라는 직함은 이제 정말 흔해졌다. 물론 공중파의 파급력은 지금도 유효하지만, TV방송의 시대가 저물어가고 있는 시점에 공채PD 역시 예전만큼 힘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시장이 넓어진 만큼 예비PD들이 자신의 적성을 테스트해보고 실전에 참여할 기회가 많아졌다. 공채 PD에 올인하는 것도 이해하지만 다양한 실험을 해볼 수 있는 장이 많다는 말도 해주고 싶다.
-새로운 아이템의 영감은 어디서 얻나.
박: 수다다. 하루 종일 마라톤 회의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정말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처음 본 사람과 이야기하다가 아이템이 떠오르기도 한다.
전: 여담이지만 조연출 시절 내 의견도 동등하게 들어줘서 좋았다.
박: 이슬예나 PD님의 좋은 점이다. ‘자이언트 펭TV’는 조연출의 의견도 똑같이 들어주고 실제 프로그램에 반영한다.
-펭수 팬들과 현재 펭수를 보좌하는 2기 매니저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박: ‘EBS아이돌육상대회’ 이후 갑자기 많은 사랑을 받기 전에는 펭수와 연출진이 가족처럼 재밌게 진행할 수 있었다. 지금은 부담도 커졌고 보는 분들도 많이 생겼다. 과거 매니저들이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씀해주시는 분들도 있는데 카메라에 많이 등장하지 않을 뿐 2기 매니저들도 다른 연출진과 마찬가지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다. 많이 아껴주셨으면 좋겠다. 2기 매니저들에게는 고생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전: 정들었던 ‘자이언트 펭TV’ 제작진이 자주 불러주면 반갑다. 구독자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고 출연료도 벌 수 있다. 나 때문에 2기 매니저들이 캐릭터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미안한 생각도 있다. 그래도 요즘 점차 자리를 잡아가고 있더라. 팬분들의 사랑에 힘입어 더 다채로운 방송이 되길 기대한다. 내부자는 아니지만 앞으로 ‘자이언트 펭TV’ 더 사랑해 달라.
-혹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한 힌트를 줄 수 있나.
박: 최근 펭수의 한국 입국 과정과 관련된 촬영을 다녀왔다. 펭수의 입국 과정을 좀 더 자세하게 전달해드릴 수 있을 것 같다. 가까운 시일은 아니지만, 팬 미팅도 계획 중에 있다. 개인적으로 과거 영상에 살짝 언급되고 넘어간 떡밥을 회수하는 영상을 늘릴 계획이다.
-마지막으로, ‘김명중’에게 바라는 것은.
박: 눈치껏 챙겨주세요.
전: 이제는 사장님 아니다.
김명희 기자 mayhee@donga.com 문영훈 인턴기자
〈이 기사는 여성동아 1월호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