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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국가공식보고서 채택해 역사 왜곡 막아야”

입력 | 2020-01-06 03:00:00

조사위원회 출범, 보고서 채택 추진
진영논리 떠나 사실 위주로 조사… 전두환 前대통령도 조사 가능성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이하 조사위원회)가 3일 출범한 가운데 5·18 단체와 조사위원회가 ‘5·18 진실을 담은 국가보고서 작성과 채택’에 매진하기로 했다.

조사위원회는 3일 오후 4시부터 1시간 동안 광주 서구 쌍촌동 5·18기념문화센터 3층 대동홀에서 간담회를 가졌다. 문흥식 5·18구속부상자회장은 “5·18 국가공식보고서가 작성되지 않아 왜곡이 반복되고 있다”며 “진실을 밝혀 5·18과 같은 불행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해 달라”고 했다. 그는 또 “국가보고서에 5·18 당시 민주공동체 정신을 꽃피운 아름다운 사연도 찾아 적어 달라”고 말했다.

정현애 오월어머니집 이사장은 “1989년 국회 광주청문회에서 증언을 했지만 보고서가 채택되지 않았다. 자식을 잃은 어머니와 남편을 떠나보낸 아내의 비극은 진실이 규명될 때만 치유될 것”이라며 “조사 결과물을 국가보고서로 만들어 달라”고 당부했다. 윤청자 오월민주여성회 회장은 “많은 여성들과 가족들에게 아직도 5·18 상처는 치유되지 않았다. 피해 여성들을 조사할 때 여성 조사관을 배치하고 신상이 드러나지 않도록 배려해 달라”고 했다. 다른 5·18부상자회 회원은 “5·18 당시 공수부대에 근무했던 군인들이 양심선언을 하려고 하면 당시 동료들이 만류하거나 심지어 살해 협박을 한다고 한다. 양심선언자들에 대한 보호가 필요하다”고 했다. 5·18단체는 각자 입장을 밝힌 뒤 조사위원회에 제안 요청서를 전달했다.

송선태 조사위원회 위원장은 세계 26개 국가에서 과거사를 조사했고 이들 중 15개 국가가 18개 보고서를 채택했다고 설명했다. 또 과거사 조사 유형이 단죄와 응징, 진실과 화해 모델이 있는데 조사위원회는 진실과 화해를 위한 진상규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비공식적으로 5·18 유공자 60여 명이 트라우마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알려진 만큼 5월 상처가 가족과 자녀에게 이어지지 않도록 치유에도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여성 피해는 전문기관에 조사를 의뢰해 신중하게 접근하겠다고 강조했다.

조사위원회는 보수·진보 진영논리를 떠나 사실 위주로 조사를 하고 5·18 진실을 담은 국가보고서를 작성하고 채택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전두환 전 대통령 조사 가능성과 필요성도 언급했다. 조사위원회는 이날 광주 북구 운정동 5·18민주묘지를 참배한 뒤 미확인 유골 40구가 발견된 옛 광주교도소를 찾아 현장을 둘러봤다.


송선태 진상규명조사위원장 “5·18민주화운동 진실고백 운동 전국 확산 기대”


“5·18민주화운동 진실고백 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기를 바랍니다.”

송선태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회 위원장(65·사진)은 5일 5·18 진실규명 조사를 시작하면서 이런 소감을 밝혔다. 송 위원장은 조사가 처벌과 응징보다 진실을 토대로 한 용서와 화해를 위한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특히 5·18 당시 부당한 명령에 따랐던 군인들이 역사 앞에 진실을 고백할 경우 정부에 사면과 감형을 요청하겠다고 말했다.

송 위원장은 “이번 조사는 5·18 피해자나 가해자가 증언을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여서 절박한 마음으로 위원회를 꾸려가겠다”며 “진실을 규명해 5·18 역사 왜곡 등 불필요한 갈등과 대립을 끝내고 싶다”고 강조했다.

전남 고흥 출신인 송 위원장은 40년 동안 5·18 진실 찾기에 주력했다. 그는 광주일고를 졸업한 뒤 1975년 전남대 국문학과에 입학했다. 5·18민주화운동의 촉매제가 된 당시 전남도청 앞 민족민주화성회를 기획하는 등 민주화운동에 참여했고 같은 해 8월 신군부에 체포돼 9개월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후 5·18민주항쟁동지회 창립 멤버로 참여하는 등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했다. 1988년부터 국회 광주특위 보좌관과 광주시의회 전문위원으로 16년간 5·18 진상규명에 매진했다.

그는 “5·18 당시 민주화운동 기록인 자유노트를 작성했는데 신군부의 고등군사법원이 이 기록을 재판에 악용한 것이 두고두고 한이 된다”며 “신군부에 체포될 당시 은신을 도와주던 둘째 누나와 매형이 고문을 당했는데 아직도 후유증을 앓고 있어 가슴 아프다”고 말했다.

이형주 기자 peneye09@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