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마지막 미공개 인터뷰
지난해 12월 24일 입적한 봉암사 적명 스님은 세속적인 욕심을 멀리하고 고독한 수행자의 삶을 한결같이 지켜왔다. 제대로 된 수행자를 찾기 어렵다는 요즘 그의 빈자리는 더욱 크게 느껴진다. 동아일보DB
―그 소문난 커피다.
“30년쯤 됐는데 내원사 부근 토굴에 있을 때 아침을 간단하게 먹는 법을 연구했다. 참선 시간도 축내지 않고 속도 편하게 할 것을 찾았다. 죽, 누룽지, 미숫가루 등 여러 가지 했는데 안 됐다. 그러다 커피에 달걀을 타 먹으니 부담스럽지도 않고 든든하더라. 중이 무슨 달걀을 먹느냐는 생각도 했지만 입이 좋다고 하니…. (웃음) 낮에는 커피 하나, 설탕 둘, 크림 둘 이렇게 탁탁 풀어 먹는다. 이놈의 중이 블랙을 먹을 줄 알아야지.”
―계율을 지키는 계행(戒行)의 파괴에 대한 종단 안팎의 비판이 거세다.
―성철 청담 향곡 스님 등이 중심이 된 봉암사 결사는 청정승가의 정신을 회복시킨 운동으로 남아 있다.
“결사에 참여했던 성수 스님으로부터 그때 얘기를 전해 들었다. 노장 말씀에 따르면 낮에는 일하고, 저녁 먹으면 참선하고, 부처님 법대로 살던 꿈같은 시절이었다고 하더라. 6·25전쟁으로 결사가 흐트러졌다. 전쟁 뒤 대처승들이 차지한 사찰을 정비하는, 정화불사(淨化佛事) 과정에서 수좌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다. 수행에 전념해야 할 수좌들이 불가피하게 사찰 주지와 총무원 행정을 맡게 됐다. 수행승들이 자의 반 타의 반 세속화한 게 요즘 종단 위기의 한 씨앗이다.”
―수좌 목소리가 예전만 못하다고 한다.
“몇 십 년 전만 해도 수좌들이 종회에 가서 발언하면 영향력이 있었는데 어느 때부터인가 종단이 수좌들 말에 신경도 쓰지 않더라. 종단의 중심이 사판승(事判僧·사찰과 종단의 행정을 담당하는 승려)으로 옮겨간 탓이다. 그런데 사판이 제대로 된 원력이 없으면 돈과 권력, 성(性)에 거리를 두기가 쉽지 않다.”
―종단의 어려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나.
“종단 운영에 참여했던 도법 스님은 ‘총체적 부패라 졸지에 바뀌기는 어렵다’고 하더라. 봐서 알겠지만 밖에서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도 효과가 없다. 당연한 얘기 같지만, 뼈를 깎는 수행과 철저하게 계를 지키는 지계(持戒)가 출발점이다. ‘저 사람은 진짜 중 같아, 부처님 제자 같아’, 이런 말들이 나와야 승가 전체와 일반 신도까지 바뀌는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성철 스님과도 인연이 적지 않다.
“노장님 계실 때 내가 해인사에서 입승(立繩·사찰의 규율 담당) 소임을 맡고 선원장도 했다. 하지만 악역을 맡아 마음고생하다 떠난다고 했더니 노장께서 섭섭해 그런지 얘기를 들으려고도 안 해. 그래, 지금 떠나지만 스님 입적할 때는 임종 지키겠다고 하니, 노장 얼굴에 화색이 돌며 ‘그 말이 정말이가’ 이러시더라.”
―남북 정상회담으로 해빙 무드다.
2013년 세계적인 명상지도자 아잔 브람과 대담을 나눈 적명 스님(왼쪽). 참불선원 제공
―조언을 한다면….
“김정은이 진정한 자유, 민주화를 위해 문을 여는 사람으로, 북한을 자유로운 사회로 이끄는 리더 역할을 하도록 만들어야 한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북한 내부는 곪아터지고, 남북, 북-미 관계 모두 어려워질 것 같다.”
―공존과 상생을 위해 어떤 마음가짐이 필요한가.
“불교의 불이(不二) 사상은 평화의 진리다. 나와 네가 대립하는 두 개의 세계가 아니기 때문에 싸울 필요가 없다. 어머니가 아이를 무한으로 사랑할 수 있는 것은 아이를 자기 자신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진정한 평화가 오려면 너와 나, 온 우주가 하나의 세계라는 자각이 절실하다.”
―사람들에게 자주 권하는 경전 구절을 들려 달라.
“화엄경이 좋다. 그중 심여공화사(心如工畵師) 능화제세간(能畵諸世間) 오온실종생(五蘊實從生) 무법이불조(無法而不造)라는 구절이 있다. ‘마음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와 같아 능히 세상사를 다 그려내고, 오온은 모두 마음으로부터 나온 것이어서 그 무엇도 만들어 내지 않은 것이 없다’는 말이다.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 결국 모든 것은 마음 하기에 달려 있다.”
문경=김갑식 문화전문기자 dunanworld@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