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대 시중은행이 작년 말부터 희망퇴직 신청을 받았다. 동아일보DB
김형민 경제부 기자
입사 15년 차인 한 시중은행 직원의 말이다. 은행들의 희망퇴직 시즌이 ‘연례행사’처럼 올해도 어김없이 돌아왔다. 각 은행들은 저마다 수억 원대의 목돈을 내걸고 중장년층 이상 직원들을 대상으로 신청자를 받고 있다. 매년 각 은행이 쓰는 희망퇴직 비용만 수천억 원에 이른다.
KEB하나은행은 지난해 말 1964, 1965년생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을 받았다. 이들에게는 최대 31개월 치 평균임금과 자녀 학자금 2000만 원, 의료비 2000만 원, 재취업 지원금 2000만 원이 주어졌다. NH농협은행은 1963년생이거나 10년 이상 근무한 만 40세 이상 직원을 대상으로 평균임금 기준 각각 28개월 치, 20개월 치를 특별퇴직금으로 줬다.
은행권의 대규모 희망퇴직은 인위적인 구조조정이긴 하지만 이젠 직원들이 오히려 기다리는 이벤트가 됐다. 수억 원대 목돈을 거머쥐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은행들도 비대면 서비스와 지점 통폐합이 속도를 내는 시기에 높은 연봉의 잉여 인력들을 한번에 내보낼 수 있는 효과를 노릴 수 있다. 시니어 직원들을 내보낸 자리에 청년 구직자를 채용할 수 있다는 점도 긍정적이다.
하지만 이렇게 천문학적인 돈을 쓰며 벌이는 희망퇴직이 은행 전체의 경쟁력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지는 좀 더 따져봐야 한다. 대규모 구조조정이 의미가 있으려면 단순히 사람을 내보내는 데 그치지 않고 저금리·저성장, 그리고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디딤돌이 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은행들은 수익의 80% 이상을 이자 장사(예대마진)를 통해 얻고 있고, 자산 대비 기업가치도 선진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핀테크 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정보기술(IT) 등 새로운 분야의 인재도 아직은 은행권에 충분히 유입되지 않았다. 큰돈을 들여 애써 고비용 인력을 내보냈는데 이처럼 돈벌이 수단이나 기업가치 등 은행의 본질이 그대로라면 희망퇴직의 의미는 반감될 수밖에 없다.
저금리와 제로성장이 상시화되는 요즘 같은 시대에는 은행업의 혁신적인 변화가 불가피하다. 윗돌을 빼서 아랫돌을 막는 식의 단순한 인력 교체만 반복된다면 국내 은행들의 미래가 그리 긍정적이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