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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견에 너그러운 美 정치권, 분열 메우는 다양성의 문화[광화문에서/이정은]

입력 | 2020-01-06 03:00:00


이정은 워싱턴특파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로 뛰고 있는 털시 개버드 하원의원(39)은 지난해 출마 선언 당시 존재감이 약한 후보였다. 이라크 복무 경험이 있는 첫 여성 참전용사 후보이자 미 역사상 최연소인 21세 하원의원(하와이주) 당선이라는 이력도 70대의 백전노장들 앞에서는 초라해 보였다. 그래서일까. 그는 초반부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쏟아내며 각을 세웠다.

그랬던 그가 지난해 12월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하원의 탄핵 표결에서 기권한 것은 의외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잘못했지만 당파적으로 진행되는 현직 대통령의 해임에는 찬성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설명. ‘아무리 그래도 민주당을 대표해 트럼프 대통령과 맞서는 대선 후보가 당론을 따르지 않다니….’ 기자에게 그의 이탈표가 유독 더 눈에 띄었던 이유다.

예상과 달리 민주당은 조용했다. 개버드 의원의 선택을 대놓고 비판하거나 ‘배신자’라고 몰아세우는 손가락질은 없었다. 트위터나 대선 캠페인 웹사이트에서 당원들의 비난 댓글도 찾아보기 어려웠다. 개버드 의원은 오히려 더 거침없이 탄핵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언론 인터뷰를 이어가고 있다. 민주당 1인자인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이 탄핵안의 상원 이관을 지연시키려는 것에 대해 “당신 마음대로 룰을 바꿀 수는 없다”며 목소리를 높인다.

민주당에서는 그 외에도 3명의 이탈표가 나왔다. 제프 밴 드루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탄핵 조사 과정에 실망했다며 아예 당적을 옮겼다. 이들에 대한 민주당과 지지자들의 반응도 차분하다.

당론을 따르지 않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공화당에서도 마찬가지. 수전 콜린스 상원의원은 상원의 탄핵심판을 앞두고 백악관과 협력할 의사를 밝힌 공화당 지도부에 대해 공개 비판을 서슴지 않았다. 리사 머카우스키 의원은 지난해 성추행 논란에 휩싸였던 브렛 캐버노 대법관 후보자의 인준에 부정적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노골적인 삿대질이나 출당 요구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이런 미 의회의 바탕에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서로 다른 의견을 경청해온 토론 문화가 깔려 있다. 어려서부터 논쟁하는 훈련과 교육을 거친 이들은 자기 의견을 내놓는 데에도 주저함이 없다. 사안별로 협력하고, 또 치열하게 맞붙는다. 양당의 협력을 이어가려는 시도 또한 계속 진행 중이다. 지난해 1월 신설된 ‘의회 근대화 특별위원회’가 의회 선진화와 협력 강화 내용을 담아 발의한 법안만 45개. 모두 양당 의원들의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트럼프 대통령의 취임 후 정치권의 분열이 심화되면서 이런 의회의 분위기가 크게 바뀌고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의회 관계자들은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다 보니 의회도 이제는 초당적 법안을 발의하기가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고 털어놓는다. 상원의 탄핵심판을 둘러싼 양당의 충돌 격화로 결집 요구가 커지면 이탈을 방지하려는 압박이 거세질 수 있다.

이런 도전에 어떻게 대응하느냐 하는 것은 미 정치권의 또 다른 숙제다. 미국이 이를 극복해나가는 과정은 ‘댓글 테러’가 잇따르는 우리 사회에 던지는 메시지도 적지 않을 것이다.

이정은 워싱턴특파원 light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