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모 드러나는 ‘세기의 탈주극’ 日 감시 잠시 중단 때 자택서 나와… 공항 “상자 너무 커 X선 검사 안해” 도주전 영화 ‘버드맨’ 제작자 만나… 영화같은 탈주극 영화화 논의
NHK방송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2시 반 도쿄 미나토구 자택을 혼자 나갔다. 자택 현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이 모습이 포착됐고 귀가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아 이때가 탈출극이 시작된 시점으로 보인다. 닛산 측은 곤 전 회장의 증거 인멸을 우려해 경비업체와 계약하고 그를 지속적으로 감시했다. 하지만 곤 전 회장 측이 지난해 12월 25일 ‘인권 침해로 경비업체를 고소하겠다’고 밝히자 경비업체는 같은 달 29일 감시를 잠시 중지했다. 이 틈을 타서 탈출한 셈이다.
곤 전 회장은 이날 오후 11시 10분경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떠났다. WSJ는 그가 미 육군 특수부대원 출신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의 도움을 받아 음향 기기를 넣는 대형 상자에 숨었다고 전했다.
조력자 남성 2명 중 1명은 미국 여권을 소지했고, 나머지 1명은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미국 기자를 구출하는 데 동원된 인물과 이름이 같다고 WSJ는 전했다.
다음 날 터키에 도착한 곤 전 회장은 강한 빗속에서 90m 정도를 차로 이동한 뒤 다른 소형 제트기로 갈아타고 레바논으로 향했다. 탈출에 사용된 이 2대의 개인 제트기는 모두 터키 MNG 소속이다. 터키 당국은 곤 전 회장의 불법 이동에 협조한 혐의로 이 회사의 조종사 4명과 간부 1명을 체포했다. 이 간부는 “(곤 전 회장 측으로부터) 협력하지 않으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곤 전 회장이 도주 전 도쿄 자택에서 2015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버드맨’을 만든 제작자 존 레셔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내용에 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곤 전 회장 측이 영화 속 악당을 ‘일본 사법 제도’로 묘사하자고 했으며 둘이 ‘구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고도 덧붙였다. 도쿄지검은 5일 “국외 도피는 일본의 사법 절차를 무시한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