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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 1m 넘는 대형 음향기기 상자에 숨어 공항 검색망 뚫어

입력 | 2020-01-06 03:00:00

전모 드러나는 ‘세기의 탈주극’
日 감시 잠시 중단 때 자택서 나와… 공항 “상자 너무 커 X선 검사 안해”
도주전 영화 ‘버드맨’ 제작자 만나… 영화같은 탈주극 영화화 논의




카를로스 곤 전 르노닛산자동차 회장(66·사진)이 벌인 탈주극의 전모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그가 일본을 탈출해 레바논에 입국하기까지 미국 특수부대 출신 용병 2명이 도움을 줬으며 터키의 민간 전세기 업체 MNG의 개인 제트기 2대도 쓰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3일 보도했다.

NHK방송에 따르면 곤 전 회장은 지난해 12월 29일 오후 2시 반 도쿄 미나토구 자택을 혼자 나갔다. 자택 현관에 설치된 감시 카메라에 이 모습이 포착됐고 귀가하는 모습이 확인되지 않아 이때가 탈출극이 시작된 시점으로 보인다. 닛산 측은 곤 전 회장의 증거 인멸을 우려해 경비업체와 계약하고 그를 지속적으로 감시했다. 하지만 곤 전 회장 측이 지난해 12월 25일 ‘인권 침해로 경비업체를 고소하겠다’고 밝히자 경비업체는 같은 달 29일 감시를 잠시 중지했다. 이 틈을 타서 탈출한 셈이다.

곤 전 회장은 이날 오후 11시 10분경 오사카 간사이공항에서 터키 이스탄불로 떠났다. WSJ는 그가 미 육군 특수부대원 출신으로 보이는 남성 2명의 도움을 받아 음향 기기를 넣는 대형 상자에 숨었다고 전했다.

개인 제트기엔 높이 1m 이상의 대형 상자 여러 개가 실렸고 공항 관계자는 NHK에 “상자들이 상당히 컸다. X선 기계에 넣기 어려운 크기여서 검사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곤 전 회장이 숨어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한 상자의 바닥에는 호흡용으로 보이는 구멍이 뚫려 있었고 또 다른 상자에는 스피커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하물 검사가 이뤄졌을 때 음향 기기라고 주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조력자 남성 2명 중 1명은 미국 여권을 소지했고, 나머지 1명은 2009년 아프가니스탄에서 무장단체에 납치된 미국 기자를 구출하는 데 동원된 인물과 이름이 같다고 WSJ는 전했다.

다음 날 터키에 도착한 곤 전 회장은 강한 빗속에서 90m 정도를 차로 이동한 뒤 다른 소형 제트기로 갈아타고 레바논으로 향했다. 탈출에 사용된 이 2대의 개인 제트기는 모두 터키 MNG 소속이다. 터키 당국은 곤 전 회장의 불법 이동에 협조한 혐의로 이 회사의 조종사 4명과 간부 1명을 체포했다. 이 간부는 “(곤 전 회장 측으로부터) 협력하지 않으면 아내와 아이들에게 해가 미칠 것이라는 협박을 당했다”고 진술했다.

뉴욕타임스(NYT)는 곤 전 회장이 도주 전 도쿄 자택에서 2015년 미국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감독상을 수상한 영화 ‘버드맨’을 만든 제작자 존 레셔를 만나 자신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드는 내용에 관해 논의했다고 전했다. 곤 전 회장 측이 영화 속 악당을 ‘일본 사법 제도’로 묘사하자고 했으며 둘이 ‘구원’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고도 덧붙였다. 도쿄지검은 5일 “국외 도피는 일본의 사법 절차를 무시한 범죄에 해당하는 행위로 정당화될 수 없다”고 언급했다.

도쿄=박형준 특파원 loves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