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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철길따라 맛집-불빛쇼 열리는 ‘공트럴파크’

입력 | 2020-01-06 03:00:00

[스트리트 인사이드]서울 노원구 ‘경춘선숲길’




서울 노원구의 ‘경춘선숲길’에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을 손쉽게 찾아볼 수 있다. 옛 화랑대역에는 체코에서 들여온 노면전차가 놓여 있다(왼쪽). 경춘선숲길 벽면에는 주민들의 시, 그림 같은 작품을 전시해 산책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붙잡는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

2000년대 초 대학생 수련모임(MT)에 가려고 서울에서 춘천 가는 기차에 오르면 언제나 이곳을 거쳐야만 했다. 성북역(현재 광운대역)을 지난 기차는 크게 반원을 그리며 느린 속도로 이곳을 지나갔다. 중랑천을 가로지르는 철교와 몇 개의 건널목 그리고 간이역이 있던 그곳. 하지만 이 철길에는 더 이상 기차가 달리지 않는다. 대신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바로 ‘경춘선숲길’ 얘기다.

경춘선숲길은 서울 노원구 일대 약 6km 길이의 산책로다. 녹천중학교 인근에서 시작해 공릉동을 관통한 뒤 옛 화랑대역을 지나 서울시계까지 이어진다.

3일 찾은 경춘선숲길에는 평일 오후인데도 적지 않은 인근 주민들이 산책을 하고 있었다. 반려동물이나 어린아이와 함께 나온 주민도 여럿 눈에 띄었다. 노원구에 사는 현광민 씨(37)는 “큰 나무들과 넓은 잔디밭은 물론이고 벤치도 많아 아이들과 산책하기에 좋다”며 “침목이나 철길건널목 차단기를 볼 때면 옛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고 말했다.

본래 이곳은 2010년까지도 기차가 다니던 단선 철길이었다. 그러다 경춘선 복선전철화 사업으로 같은 해 12월 망우∼퇴계원 구간이 신설되면서 기존 성북∼퇴계원 구간은 폐선 처리됐다. 폐선 부지에는 쓰레기와 몰래 세워놓은 차들이 들어차기 시작했다. 도심의 공터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었다. 서울시는 2013년 공원 조성 공사를 시작했다. 2015년 5월부터 단계적으로 조성돼 2017년 11월 모든 구간이 개통됐다. 지난해 1월에는 행복주택이 들어선 부근 0.4km 구간도 공원 조성을 마쳤다.

이곳에서는 아날로그 감성을 자극하는 소품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철길을 원형 그대로 활용한 산책로에는 녹슨 철로와 침목이 놓여 있다. ‘멈춤’ 글씨가 아직도 선명한 낡은 신호등과 차단기, 철도분리기도 추억을 자극하기에 충분하다. 서울의 마지막 간이역인 옛 화랑대역은 그야말로 철길 위 박물관이다. 등록문화재 제300호인 역사(驛舍)에는 승차권 판매소, 철제 책장 등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옛 수인선(수원∼남인천)과 수려선(수원∼여주)을 운행했던 협궤열차, 1967년까지 경부선을 달렸던 증기기관차도 볼 수 있다. 체코와 일본에서 각각 들여온 노면전차(트램)도 전시돼 이국적인 정취를 더한다.

숲길 곳곳에는 지역주민들이 함께 가꾸는 텃밭도 조성했다.

김혜량 노원구 푸른도시과 팀장은 “차창 밖으로 이름 모를 들꽃과 시골 정취 물씬 나는 텃밭을 보던 기차여행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산책로를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숲길이 조성된 뒤 젊은이들을 타깃으로 하는 카페나 음식점, 액세서리 소품가게도 줄줄이 들어서고 있다. 약 10년 전만 해도 근처의 서울과기대, 서울여대 학생들은 “학교 앞에 갈 곳이 변변찮다”며 지하철이나 버스를 타고 강남, 대학로 등지로 나가곤 했다. 그러나 최근에는 오히려 이곳이 감성을 자극하는 ‘핫플레이스’로 떠오르고 있다.

서울 서쪽 ‘경의선숲길’의 연남동 구간을 미국 뉴욕의 센트럴파크에 빗대 ‘연트럴파크’라고 부르듯이, ‘공트럴파크(공릉동+센트럴파크)’라는 말도 생겼다. 약 1년 반 전 이곳에 카페를 연 김효진 씨(40·여)는 “날씨가 좋은 주말이면 동네와 카페를 구경 오는 사람들로 산책로가 붐빌 정도”라고 말했다.

노원구는 경춘선숲길이 더 많은 주민들이 애용하는 쉼터로 거듭나도록 다양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옛 화랑대역 일대에 ‘노원불빛정원’을 조성했다. 불빛터널, 음악 정원 등 전구나 발광다이오드(LED)를 활용해 밤마다 즐길 거리를 보여주고 있다. 오승록 노원구청장은 “공원 곳곳에 더욱 다양한 볼거리를 채워 새로운 서울의 명소로 만들겠다”고 말했다.

박창규 기자 kyu@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