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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기술 패권 다투는 美-中… 韓, 기술력 갖추고도 규제에 발목

입력 | 2020-01-06 03:00:00

[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글로벌 AI전쟁, 미래를 잡아라]
<2> 한국 수준 어디까지 왔나




지난달 24일 국내 최고 수준의 인공지능(AI) 원천기술을 보유한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박종열 시각지능연구실장이 AI 기반 사물인식 프로그램을 설명하고 있다. 대전=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거리의 폐쇄회로(CC)TV 카메라가 찍은 화면은 많은 행인이 오가는 관광지의 자연스러운 풍경을 담았다. 하지만 키보드 버튼 하나를 누르니 순식간에 모든 사람마다 제각기 다른 색깔의 사각 프레임이 씌워지고 ‘사람1’ ‘사람2’ 식의 ‘이름’이 붙었다. 심지어 어깨에 멘 가방에도 ‘백팩1, 2, 3…’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영상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프레임에 들어온 순간부터 사라질 때까지 이렇게 추적된다.

지난해 12월 24일, 한국 인공지능(AI) 원천기술의 산실인 대전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서 본 ‘시각 인공지능(AI)’ 프로그램이다. AI가 영상이나 사진 속의 사람, 사물 등 객체를 모두 인지하고 분석, 추적하고 있었다. 망막에 맺힌 영상이 시신경을 타고 뇌로 전달되는 사람의 인지 과정이 이제 AI에서는 사람과 비교 불가능할 정도로 뛰어난 시력과 속도, 체력으로 가능해진 것이다.

박종열 ETRI 시각지능연구실장은 “이제 국내 시각 AI 기술은 ‘쓰레기 투기’와 ‘짐을 내려놓는 것’까지 구별할 수 있는 수준에 왔다”고 설명했다. 한국의 시각 및 언어 관련 AI 기반기술은 세계무대에서 겨뤄볼 만한 잠재적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다.

○ ‘미국 천하’ AI, 도전하는 중국


초기 글로벌 AI 시장은 ‘미국 천하’였다. 195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AI 연구는 2000년대 후반 ‘AI 4대 천왕’이라 불리는 제프리 힌턴 토론토대 교수, 얀 르P 뉴욕대 교수, 앤드루 응 스탠퍼드대 교수, 요슈아 벤지오 몬트리올대 교수 등 ‘스타 과학자’의 등장으로 부흥기를 맞았다. AI의 핵심인 딥러닝 기술의 창시자 힌턴 교수는 구글에서, 르P 교수는 페이스북에서 AI 연구를 이끌고 있다.

박 실장은 “결국 이 AI 4대 천왕과 이들의 제자들이 주축이 된 커뮤니티가 현재까지 글로벌 AI 기술의 개척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단일 구도는 최근 중국의 강력한 추격에 맞닥뜨리고 있다. 기술력에서는 유럽이 중국을 근소하게 앞서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전방위적으로 미국에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이다. AI의 씨앗인 데이터 관련 규제 무풍지대인 데다 AI를 국가 전략산업으로 내세우고 정부가 2030년까지 1조 위안(약 166조 원)에 이르는 대규모 투자와 인력 양성에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4대 천왕 중 한 명인 응 교수를 바이두의 AI 최고 연구 책임자로 영입하고 구글의 AI 센터를 중국 안으로 유치하는 등 미국의 선도 기술을 스펀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이윤근 ETRI 인공지능연구소장은 “중국은 막대한 인구로부터 쏟아지는 데이터를 자유롭게 수집 활용할 수 있어 엄청난 강점을 지녔다”며 “기술력과 데이터를 기반으로 이제는 ‘타도 미국’을 외치고 있다”고 말했다.

○ 한국, 특허등록 세계 3위-스타트업 수 2위


후발주자인 한국엔 다행히도 2016년의 ‘알파고 쇼크’가 AI 연구개발 투자의 모멘텀이 됐다. 반도체와 스마트폰, 5G 등 한국이 가진 선도 기술과 시장 경험 또한 추격의 연료가 되고 있다. 한국정보화진흥원(NIA)이 2일 발표한 지난해 기준 ‘우리나라 인공지능 수준 조사’ 결과에 따르면 주요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은 AI 관련 특허 등록 개수(3위)와 AI 스타트업 수(2위) 지표에서 선방하고 있다. 하지만 전반적인 지표에선 아직까지 미국과 중국이 1, 2위를 다투며 상위권을 점령하고 있다. 한국의 AI 기술 수준은 미국 대비 81.6%로 2년의 기술격차가 난다.

최근에는 삼성전자나 SK 네이버 등 주요 기업들이 글로벌 AI 석학 유치와 기술개발에 속도를 내고, 정부도 ‘AI 국가전략’을 통해 제도개선을 뒷받침하고 있다. 하지만 AI 기술의 자원인 데이터 사용을 보다 자유롭게 하는 데이터3법(정보통신망법, 개인정보보호법, 신용정보법) 개정안 처리가 미뤄지고 원격의료 불가와 같은 상용화 규제는 여전히 장벽으로 남아있다.

AI 전문가들은 더 이상 AI 기술 격차가 벌어지지 않도록 전략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성환 고려대 인공지능대학원 교수는 “AI 기술 추격국인 한국으로서는 반도체 스마트폰 로봇산업 등 한국 제조업의 강점을 AI와 접목시키는 ‘AI+알파’의 개념을 강화해 나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상균 서울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추진 단장은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알리바바 등 거대 기업들에 비해 한국은 클라우드, 데이터, 인재 등 생태계의 규모 측면에서 많이 부족하다”며 “독일 프랑스 등 AI 후발 국가들과 연대하거나, 외국 기업의 AI 연구소를 국내에 유치하는 등 국경을 넘어 보다 거시적인 시야로 대책을 수립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대전=황태호 taeho@donga.com / 곽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