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이란의 대결로 중동의 전운이 짙어지는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5일 북핵 문제와 관련해 “그(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가 내게 한 약속을 깰 것으로 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그럴 수도 있다”고 말했다. 북-미 대화 국면을 유지해 온 전제였던 북한의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중단 약속을 김정은이 파기할 가능성을 언급한 것이다.
그간 북한의 잇단 위협에도 “김정은은 약속을 지킬 것”이라고 강조해 온 트럼프 대통령이다. 그런 그가 김정은의 약속 파기 가능성을 거론한 것은 분명한 대북 경고 메시지일 것이다. 나아가 미 정보당국의 북한 동향보고에 기초한 실질적 도발 가능성을 우려한 것일 수도 있다. 이란의 ‘피의 보복’ 협박에 맞대응하느라 바쁜 트럼프 대통령이지만 북핵은 미국에 무시할 수 없는 위협이라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고 있는 것이다.
중동 갈등은 핵 위기로 증폭되고 있다. 이란은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5월 일방 탈퇴한 핵합의의 이행 중단을 선언했다. 이로써 이란 핵합의는 좌초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의 보복에 훨씬 막대한 응징을 가하겠다며 ‘불균형적 반격’을 경고하는 것도 핵 확산의 고삐가 중동과 동북아에서 동시에 풀리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의 모든 관심은 연말 대선과 연결돼 있다. 탄핵 정국인 데다 주변에 그를 말릴 ‘어른의 축’마저 사라진 터에 그의 ‘정치 본능’은 더욱 분출할 것이다. 북한 도발에 대한 응징은 상상을 초월할 수 있고, 북한의 타협엔 더없이 너그러운 합의를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북한도 늘 이런 상황을 기회로 이용해왔다. 당분간은 몸을 사릴지 모르지만 혼란을 틈탄 도발로 유리한 협상을 끌어내려는 모험주의를 발동할 가능성이 높다.
중동의 불안과 함께 한반도 정세는 더 큰 불확실성에, 특히 북-미 두 정상의 충동주의와 모험주의 성향에 맡겨진 형국이다. 위태로운 파국이든, 어설픈 타협이든 그 과정에 한국은 배제될 가능성도 높다. 가뜩이나 미국과는 호르무즈 파병과 방위비분담금 협상 등 현안이 산적해 있다. 정부는 정신 바짝 차리고 한미 공조 강화와 안보태세 점검부터 서둘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