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이란 일촉즉발] 이란, 이미 핵합의 기준 넘겨 10개월이면 필요한 우라늄량 추출 탈퇴 선언하며 “제재 해제땐 복귀”… 11월 美대선후 새로운 대화 나설듯 美, 북핵 문제 후순위로 미룰수도
핵 전문가들은 이란이 제한 없이 핵 프로그램 재개에 나설 경우 빠르면 1년 반 안에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데이비드 올브라이트 미국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 소장은 미국이 핵합의를 탈퇴한 직후인 2018년 5월 뉴욕타임스(NYT)에 “이란이 우라늄 농축시설을 복구, 가동해 핵무기 제조가 가능한 양의 우라늄을 추출하는 데 8∼10개월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이란은 2015년 핵합의에 따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감시하에 당시 보유 중이던 1만9000개의 원심분리기 중 약 3분의 2를 제거하고 6100여 개만 남겼다. 그러나 지난해 9월경부터 다시 시설 확충에 들어갔고, 핵합의에서 허용된 ‘IR-1’ 원심분리기보다 농축 속도가 약 10배 빠른 ‘IR-6’, 농축 속도가 약 50배 빠른 ‘IR-9’도 가동 중이다. 핵합의에서 정한 △농축우라늄 저장 한도(우라늄 동위원소 기준 202.8kg. 육불화 우라늄 기준 300kg) △중수 저장 한도(130t) △우라늄 농도 상한(3.67%) 기준 등도 넘긴 상태다.
미-이란 간 핵협상이 다시 진행되려면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요구한 12개 조건(모든 핵 시설에 무제한 접근 허용, 중동 지역 내 민병대 지원 중단 등)을 완화하는 것이 시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분간 이런 조치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미-이란 대화 혹은 재협상은 11월 미 대선 이후가 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트럼프의 당선 여부와 이 시기 미국의 스탠스 등을 감안해 이란도 새로운 전략을 짜려 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유럽은 이란 정부에 핵합의 탈퇴 철회를 강력히 촉구하고 나섰다고 AFP통신이 전했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5일(현지시간) 정상 간 전화회담 후 “핵합의에 부합하지 않는 모든 조치를 철회할 것을 이란에 촉구한다”는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이란의 핵 개발 문제가 불거질 경우 교착 상태인 북-미 협상의 진행에도 영향이 불가피하다. 지금까지 북한과의 핵 협상에 집중해온 트럼프 행정부의 관심이 분산되면서 북한 문제가 후순위로 밀리거나 관련 업무 속도가 떨어질 수 있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미국과 이란이 준전쟁 상태로 치닫고 있는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적으로 북한 문제에 임할 이유가 현재로서는 없어 보인다“고 분석했다.
북한이 북-미 협상 재개를 원할 경우 미국의 관심을 끌기 위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도발을 재개하는 ‘충격요법’을 사용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북-미 교착상태가 초긴장국면으로 급격히 전환될 수 있다.
미국에 대한 반발과 적개심을 공유하고 있는 북한과 이란이 향후 핵 개발에 협력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 의회조사국(CRS)은 지난해 3월 북한과 이란 군부가 핵, 미사일 개발 협력을 지속하는 것으로 의심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냈다.
카이로=이세형 turtle@donga.com / 워싱턴=이정은 특파원 / 한기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