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中 합의 불안-韓日관계도 암초 WTO체제 가고, 주요국 이합집산… 새로운 통상질서 정부 대응해야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우선 현재 알려진 미중 간 1단계 합의안은 올해 미국 대선이 본격화되는 시점에서 파기될 소지가 높다. 강경한 대(對)중국 무역보복 조치로 지지층뿐 아니라 부동층의 표를 결집해야 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정치적 계산 때문이다. 레이건 행정부에서도 일한 핵심 통상 관료들이 1980년대 중반 일본을 압박해 다양한 수출 제한에 합의한 다음 해 무역보복 조치를 강행한 전례가 있다.
1단계 합의안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미중 간 관리무역체제가 야기하는 피해에 대비해야 한다. 중국이 미국과의 합의에 따라 품목이나 산업별로 수입 물량이나 수입 상대국을 인위적으로 통제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러한 미중 간 합의는 중국 경제의 미국에 대한 의존성을 키워 중장기적으로 미국의 통상보복 조치에 대한 중국 시장의 취약성을 증가시킨다. 여전히 중국 시장에 매여 있는 우리 수출산업에는 구조적인 위험 요인이다.
지소미아 조건부 연장으로 임시 봉합된 한일 관계도 3월경 징용 피해 배상 판결이 강제 집행되는 경우 심각한 상황으로 치달을 수 있다. 우리 정부의 청구권협정 중재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기존의 수출 규제 조치와는 달리 공식적으로 내세우지 않는 본격적인 경제 보복 조치들이 시행될 소지가 크다.
어느 때보다 험한 교역 환경에도 불구하고 우리 경제는 지난 3년 연속 무역 1조 달러 규모의 산업과 교역 구조를 유지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수치상의 실적도 잠재 성장률이 2.5% 수준까지 내려앉고 경제활동인구가 2022년부터 감소를 앞둔 상황에서 지속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1970년대 이래 항상 안정적인 무역수지 흑자 기조를 유지하면서 특히 한국에 대해서는 막대한 흑자를 쌓아온 일본이 2011년부터 적자를 보이는 점은 주목할 부분이다. 인구 고령화로 저축률이 2%대로 급격히 줄면서 거시경제적인 추세 변화를 겪는 것이다. 우리 산업계와 정부도 무역수지 흑자를 앞세운 사업전략과 통상정책의 한계를 직시해야 한다. 더욱이 우리 정부는 이미 55개국과 16건의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한 터라 추가적인 관세 인하로 수출을 확대하는 세일즈 통상의 효과는 크게 기대하기 어렵다. 그 대신 우리 정부는 미국이 재편하는 국제 통상질서, 그리고 중국이 구축하는 세계시장 관행에 우리 산업계가 신속히 적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
미국은 무역수지 적자가 악화되던 1980년대 중반 자국의 경쟁력이 압도적인 서비스산업을 위해 우루과이라운드를 통해 서비스 무역협정을 마련했다. 시가총액 기준 세계 5대 기업 중 4개가 미국의 테크기업인 현 시점에서 미국은 디지털 무역협정을 내세워 국제 통상질서의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 중국은 이에 맞서 민간 차원의 인해전술로 자국 디지털 기술과 표준을 확산하는 중이다. 코스닥 시장에 상장된 모든 기업들의 주식을 다 모은 시가총액이 미국 테크기업 하나에도 못 미치는 우리 산업계는 여전히 디지털 전환과는 괴리가 큰 산업지형에서 고투 중이다.
2020년의 통상환경은 험난하다. 우리 산업계와 정부가 익숙해진 WTO 체제 대신 미국, 일본 그리고 유럽연합(EU)이 구축하는 경제블록이 예상치 못한 암초로 대두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 산업계는 중국 공장에서 미국 시장으로 보내던 기존의 사업 방식을 미국 공장에서 중국 시장으로 보내는 사업 전략으로 전면 수정해야 한다. 그러한 산업지형의 전환을 국내 제도로 뒷받침하고 통상협상에 반영하는 것은 정부의 몫이다.
안덕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