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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호르무즈’ 대응 카드 스스로 버린 정부[국방 이야기/손효주]

입력 | 2020-01-07 03:00:00


정부가 지난해 12월 미군으로부터 반환받았다고 밝힌 4개 주한미군 기지 중 하나인 인천 부평구 캠프 마켓 전경. 부평구 제공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과거와 비교해 달라진 게 없다. 정부가 내세운 성과는 궁색하다.”

국방부, 외교부 등 유관부처가 주한미군 기지 4곳을 반환받았다고 발표한 지난해 12월 11일. 군 내부에선 이런 반응이 주를 이뤘다. 정부가 반환을 승인한 4개 기지는 기지 환경오염 정화 비용을 누가 낼 것인지를 두고 한미가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약 10년간 반환이 지연됐던 곳.

정부는 4개 기지의 반환은 과거 사례와는 다르다고 강조했다. 미군이 기지를 반환했음에도 환경오염 정화 책임 여부를 따지는 한미 간 협의에 계속 응하기로 했다는 것. 과거 미군은 기지를 반환하고 나면 더 이상은 환경 협의에 응하지 않았다. 정부는 “미군이 전향적인 자세를 보였다”며 ‘과거와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를 두고 ‘궁색하다’는 비판이 나온 건 협의의 결론이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었다. 미군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진행된 기지 반환 사례 중 정화 비용을 낸 전례가 없다.

미 정부는 미국 법률에 근거한 ‘KISE 원칙’을 내세운다. 공공안전, 인간건강, 자연환경에 급박한 위험이 있는 오염이 발생했을 경우 외엔 미 정부가 정화 비용을 내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미군은 “급박한 위험이 있는 오염이 발생했다면 우리가 해당 기지에 주둔하지 못했을 것”이란 입장이다. 군 관계자는 “미군의 ‘버티기 작전’에 맞서 이긴 나라는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반환 발표 당시 미군과의 환경 협의 지속 여부와 무관하게 정화 비용을 한국 정부가 내는 결론은 같을 것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미군과 협의를 계속하게 되면 결론이 달라질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비치며 이를 성과로 포장했다. 정부는 ‘성과 아닌 성과’ 홍보에 집중한 나머지 정작 강조해야 할 부분은 놓치는 패착을 뒀다. “방위비 협상과 기지 반환은 무관하다”며 두 사안의 연계 가능성을 일축한 것.

정부가 추산한 4개 기지 정화 비용은 약 1100억 원. 정부가 지난해 12월 반환 절차를 개시한다고 밝힌 용산기지는 2011년 추산된 비용이 1030억 원이었다. 이외에도 반환을 추진 중인 기지 20여 곳의 정화 비용을 모두 합하면 천문학적인 비용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50억 달러에 가까운 방위비를 요구하는 미국에 대응해 어떤 식으로든 방위비 협상과 기지 반환 문제를 연계했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것도 정화 비용 규모가 너무 커서다. 군 고위 관계자는 “방위비 협상과 무관하다고 일축할 것이 아니라 ‘노코멘트’로 전략적 모호성을 유지하며 향후 협상에 활용할 여지를 뒀어야 했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정화 비용 문제는 한국 정부의 동맹에 대한 기여와 헌신을 부각할 활용도 높은 카드였는데 활용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3일(현지 시간)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이 미군 공습으로 사망한 이후 미국과 이란의 정면충돌 위기가 고조되자 호르무즈 해협으로의 한국군 파병을 추진하던 정부는 이를 고심하는 모습이다.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등이 터지는 격이 될까 우려하는 듯하다.

전운이 고조된 만큼 미국은 한국의 고심과 별개로 호르무즈 파병을 더 강하게 요구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태가 악화될 경우 지상군 전투병력 파병까지 요구할 가능성도 있다. 이렇게 되면 한국은 방위비 증액과 파병을 통한 동맹의 기여를 요구하는 미국발 ‘쌍끌이 압박’에 무방비로 노출될 가능성이 크다.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야 할 건 미국이 아니라 우리 정부”라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어차피 한국 정부가 정화 비용을 내는 것으로 귀결될 문제라면 지금이라도 이미 반환받은 기지에 대한 미군과의 무의미한 환경 협의를 끝낼 필요가 있다. 그 대신 한국이 천문학적 정화 비용을 내겠다고 먼저 발표하는 식으로 향후 더 거세질 미국의 ‘동맹의 기여’ 압박을 막아낼 방패 하나를 마련해둬야 한다.

정부가 섣불리 버린 카드지만 이 카드를 재활용하는 건 정부 의지에 달렸다. 10년을 끌어온 4개 기지의 갑작스러운 반환이 대미용임을 명확히 해야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정치적 반환이라는 의혹도 해소될 수 있다.
 
손효주 콘텐츠기획본부 기자 hjs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