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나은 100년을 준비합니다 / 다음 100년 키우는 재계 뉴 리더] <2> 혁신 DNA 수혈 나선 ‘뉴 삼성’
삼성이 2017년 지분 투자한 스타트업 펄스의 미치 갤브레이스 대표가 지난해 12월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펄스 사무실에서 동아일보 기자와 만나 근무 환경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24시간 가전 수리공 연결 플랫폼을 개발한 펄스는 창의적인 근무 환경을 만들기 위해 사무실 곳곳을 그라피티로 장식했다. 샌프란시스코=유근형 기자 noel@donga.com
지난해 12월 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를 찾아가 만난 스타트업 ‘펄스(Puls)’의 미치 갤브레이스 대표는 “삼성은 우리가 원하는 정보와 기술을 제공할 뿐 아니라 다른 업체와 협력을 주선하는 것에도 주저하지 않았다”며 이같이 말했다.
24시간 가전 수리공 연결 플랫폼을 개발한 펄스는 2017년 삼성의 투자를 받은 후 성장가도를 달리고 있다. 가전 애프터서비스(AS)가 한국에 비해 불편한 미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지에서 큰 인기를 거두며 ‘AS업계의 우버’로 불리고 있다. 2017년 약 35만 명이던 소속 기술자는 현재 약 4배 가까이로 늘어났다.
펄스 사례는 삼성의 새로운 변화를 보여준다는 게 업계의 평가다. 삼성의 실리콘밸리 투자의 첫 번째 원칙인 ‘지분은 소유하되 간섭하지는 않는다’가 실제 적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전자의 한 고위임원은 “과거 산업화 시대에 그룹이 미국에 투자했다면 철저한 목표 아래 관리가 이뤄졌을 것”이라며 “투자 기업에 대한 자율성 보장은 삼성이 새로운 기업문화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했다.
현장에서 만난 프랜시스 호 SSIC 산하 삼성캐털리스트펀드 전무는 “실리콘밸리는 미래 세상이 어디로 갈지 예측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는 혁신 공간”이라며 “2, 3년 안에 즉시 도움이 되는 아이디어도 보지만 현재 삼성의 사업과 무관한 영역까지 눈과 귀를 열고 주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SSIC와 삼성넥스트가 주축이 된 ‘원석’ 발굴도 가시적인 성과로 이어지고 있다. 삼성넥스트에 따르면 2013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투자한 90개 스타트업 중 65개가 활발히 운영 중이다. 나머지 25개 스타트업 중 14개는 다른 회사에 매각돼 삼성에 수익을 남겼다. 투자 실패 사례는 11개 기업에 불과하다.
브렌든 킴 삼성넥스트 글로벌투자 팀장은 “벤처 10곳 중 1, 2곳만 살아남아도 성공이라는 인식이 지배적인 실리콘밸리에서 현재의 투자성과는 꽤 괜찮다. 앞으로 추가 실패사례가 나올 수 있지만 우리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했다.
삼성은 실리콘밸리 조직을 통해 이종 DNA 수혈이라는 리더십 체인지도 꾀했다. 2012년 영입된 삼성의 첫 최고혁신책임자(CIO) 겸 삼성넥스트 사장인 구글 출신 데이비드 은 사장이 대표적이다. 이 부회장과 실리콘밸리 출신 임원진은 삼성 전체의 혁신 DNA를 바꾸고 있다.
삼성이 미래 신성장 산업을 발표한 것은 2010년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발광다이오드(LED), 태양전지, 자동차용 전지, 의료기기, 바이오 등 5대 신수종 사업을 발표한 이후 8년 만이었다. 장기 투자가 필요한 바이오를 제외하고 이 부회장은 4차 산업혁명 기술 기업으로 삼성을 전환시키겠다고 밝힌 셈이다.
이 부회장은 이를 위해 개방과 협업, 선행기술 투자 등 실리콘밸리식 혁신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 경영진을 잇달아 소집하며 “지금은 어느 기업도 10년 뒤를 장담할 수 없다. 그동안의 성과를 지키는 차원을 넘어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며 변화를 주문했다.
샌프란시스코·멘로파크=유근형 noel@donga.com / 김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