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이 3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회관에서 동아일보와 인터뷰했다. 이 회장은 “국민의 다수가 찬성한다면 공수처를 설치하는 것이 맞지만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 설치법은 미흡한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홍진환 기자 jean@donga.com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55)은 검사와 수사관 등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구성원의 정치적 독립성을 강조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이 회장은 “공수처 제도 도입이 과거 정치 권력과 손잡은 검찰에 대한 국민의 불신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공수처(검사 25명, 수사관 40명 이내)는 서울중앙지검 반부패수사 부서 3개 정도를 합친 정도의 작은 규모여서 실제로 정치적 외압에 휘둘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지난해 12월 30일 국회를 통과한 공수처 설치법은 7명으로 구성된 공수처장 후보 추천위원회를 두도록 했다. 7명엔 법무부 장관, 법원행정처장과 함께 대한변협회장도 포함돼 있다. 공수처 설치법은 공포 후 6개월이 지난 날부터 시행하는 것으로 돼 있어 이르면 7월 공수처가 설치된다. 지난해 2월 취임한 이 회장의 임기는 2021년 2월까지여서 초대 공수처장 후보 추천에 참여하게 된다. 3일 서울 강남구 대한변협회관 집무실에서 이 회장을 만났다.
“여야가 각각 원하는 2명이 포함된 전체 7명의 추천위원 중 6명이 동의해야 공수처장 후보로 추천할 수 있게 돼 있다. 외견상으로는 추천 기준이 아주 엄격한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야당 몫 추천위원 2명이 다 반대하면 추천을 못하는 것 아니냐 하는 논리로, 아주 중립적인 인사가 후보로 추천될 것 같은 외형을 갖춘 것처럼 얘기한다. 하지만 지금의 우리 정치 현실을 보면 의문이 든다. 지금 야당의 성향이 명확하지가 않다. 특히 이번에 ‘4+1’(더불어민주당, 바른미래당 당권파, 정의당, 민주평화당+대안신당) 협의체가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뭐랄까, 야당 몫 2명 모두 정말 야당 역할을 할 것인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생긴다. 4월 국회의원 총선거에서 국회 지형이 어떻게 바뀔지 모르니 지켜봐야 하겠지만 국회 지형이 어떻게 달라지든지 간에 공수처장 추천위의 구성은 누가 봐도 동의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이어야 한다.”
―2명의 후보를 추천하고 그중 1명을 대통령이 지명하게 돼 있다.
“대통령에게 복수의 후보를 추천하게 되면 그중엔 반드시 대통령이 원하는 사람이 들어가게 돼 있다. 2명을 추천하면 여당 몫과 야당 몫으로 1명씩 포함될 것이다. 그러면 대통령 입장에선 누구를 지명하겠나. 형식적인 추천 절차가 될 수밖에 없다. 그냥 구색 맞추기가 돼 버리는 거다. 복수로 추천하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된다. 정말로 정치적 독립성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을 공수처장으로 임명하고자 한다면 추천위원들이 며칠씩 밤새워 토론을 하더라도 단수 후보를 추천하는 것이 맞다. 대신 대통령에겐 거부권을 주면 된다. 대통령이 볼 때 단수로 추천된 후보가 공수처장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기엔 도저히 곤란한 사람이라고 판단되면 합리적인 이유를 붙여서 거부권을 행사하면 된다.”
―공수처법 설치법 수정안의 ‘24조 2항’이 논란이 되고 있다.
―판검사와 경무관 이상 경찰로 대상을 제한했지만 공수처가 기소권까지 갖는다.
“지금 검찰 개혁 차원에서 추진돼 온 검경 수사권 조정의 방향이 큰 틀에서 보면 수사는 경찰이, 기소는 검찰이 하자는 것이다. 검경 간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다. 그런 측면에서 볼 때 같은 수사 기관인 공수처가 수사권과 기소권을 다 갖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특검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는 구조이긴 하지만 특검은 특정 사건에 대해 한시적으로만 운영된다. 상시적으로 고위공직자 범죄를 수사하는 공수처와는 사정이 다르다.”
―대한변협은 공수처 설치법에 대한 공식적인 의견을 내지 않았다.
“국민의 다수가 공수처 설치에 찬성하고 있지만 변호사회 안에서 보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한반도인권과통일을위한변호사모임 등 다양한 이념적 성향을 가진 모임이 있다. 모두 대한변협 회원들이다. 한국 사회는 지금 우리 편이 아니면 전부 적으로 간주해 편 가르기를 하는 일이 일상화됐다. 어떤 사안이 생기면 정말 많은 변호사들이 개별적으로 나한테 전화를 하는데 의견이 다 다르다. 새벽 4시에 전화를 하는 변호사도 있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퇴 문제가 대표적이다. 사퇴 촉구 성명서를 왜 발표하지 않느냐는 질타가 엄청 많았다. 그만큼 많은 변호사들이 검찰 개혁에 대해 왜 목소리를 내지 않느냐고 했다. 특정 사안에 대해 전국지방변호사회장협의회를 거치면 의견이 딱 반으로 나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어느 한쪽을 택해 대한변협의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하기는 어렵다. 대신 문제가 있어 보이는 공수처법 조항들에 대해선 심포지엄 등을 통해 지적하고 개정을 계속 요구할 것이다.”
“공수처도 검경 수사권 조정도 출발점은 모두 검찰 개혁이다. 검찰 개혁에 대한 국민의 지지가 압도적으로 높다. 법무부와 검찰이 수많은 검찰 개혁안을 내지만 아직도 검찰이 개혁돼야 한다는 국민의 목소리가 높다. 그렇다면 큰 틀에선 검경 수사권이 조정돼야 하는 게 맞다. 지금처럼 검찰이 모든 수사를 다 손에 쥐고 기소 여부까지 결정하는 그런 구조는 바뀌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사권 조정안에 보완할 부분은 없나.
“변호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를 했을 때 검경 수사권 조정 자체에 대해선 찬성하는 의견이 다수였다. 그런데 경찰에 완전히 독립된 수사종결권을 주는 것에 대해선 반대 의견이 더 많았다. 의뢰인을 변론하는 과정에서 경찰과 많이 접촉하는 변호사들이 국민의 인권과 변론권 보장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검찰이 갖고 있는 수사권을 경찰에 전부 다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수사권 조정 법안에 따르면 경찰은 혐의가 인정되는 사건만 검사에게 넘기고, 혐의가 없다고 판단한 사건은 자체적으로 수사를 종결한다) 경찰의 수사 종결로 묻혀버릴 수 있는 사건에 대한 견제 장치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강도 높은 검찰 개혁을 예고했다.
“검찰이 살아 있는 권력에 칼끝을 겨누고 메스를 대야 한다는 그런 여망 때문에 검찰 개혁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계속돼 온 거다. 그런데 정작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대니까 정치적인 목적이 있다, 보복이다, 먼지떨이식이다 하면서 비난하고 있다. 살아있는 권력에 칼을 댄 검사들이 인사에서 보복당할 위험이 있다면 누가 살아있는 권력을 수사할 수 있겠나. 살아있는 권력에 칼끝을 들이대라고 주문해 놓고 칼끝이 들어오면 인사로 그 모든 걸 원점으로 돌려놓겠다는 식이면 공수처도, 검경 수사권 조정도 아무 소용이 없다. 현재 진행 중인 수사에 대해 이런 식으로 논란을 제기하는 건 문제다. 잘된 수사인지 잘못된 수사인지는 법원이 최종적으로 판단하는 거다.”
―문재인 대통령이 정치인을 포함한 신년 특별사면을 했다.
“사면권은 대통령의 권한이긴 하지만 원칙과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정치인이라고 해서 다른 범죄자보다 특혜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특정 정치인을 사면하려면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됐거나, 특별한 이유가 있거나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면권을 쉽게 행사해선 안 된다. 그런 점에서 정치인이 다수 포함된 이번 사면은 아쉬움이 있다. 이번 사면 대상에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포함됐다. 이들을 병역법 위반으로 처벌하면 안 된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이 있었다. 헌법재판소는 대체복무제를 병역의 종류로 규정하지 않은 병역법은 위헌이라고 결정했다. 그러니까 이번에 사면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은 더 이상 현행법으로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사회적인 공감대가 형성돼 있는 거다. 하지만 정치인 범죄자는 그렇지 않다.”
● 이찬희 대한변호사협회장은
△용문고, 연세대 법학과 및 법무대학원 졸업
△1998년 제40회 사법시험 합격(사법연수원 30기)△2005년 1월∼2007년 1월 서울지방변호사회 재무이사
△2007년 2월∼2009년 2월 대한변호사협회 사무총장, 재무이사
△2010년 스폰서 검사 사건 특별검사팀 특별수사관
△2017년 1월∼2018년 12월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
△2019년 2월∼현재 대한변호사협회 협회장
△2019년 3월∼현재 연세대 특임교수
이종석 wing@donga.com·배석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