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게모니의 미래’ 출간 앞둔 현인택 前 통일부 장관
2월 정년퇴임을 앞둔 국제정치학자 현인택 고려대 교수는 한국의 미래에 관해 “헤게모니 경쟁 사이에 놓인 약소국은 대립에서 ‘엑시트(exit·퇴장)’한다는 선택지가 없어 맞서 싸우든, 충성하든 둘 중 하나”라며 “주변국이 호혜적 헤게모니 국가라면 다행이지만 강압적 헤게모니 국가라면 우리 역사에서 봤듯 침탈을 당할 뿐”이라고 경고했다. 김동주 기자 zoo@donga.com
현 교수는 다음 달 25년간 몸담았던 고려대를 정년퇴임한다. 석사를 마치고 1982년 이 학교 강단에 선 것부터 따지면 38년 만이다. 주요 논문을 모으고 새 글을 붙인 ‘헤게모니의 미래’(고려대출판문화원)도 곧 출간할 예정이다.
3일 서울 성북구 고려대 연구실에서 만난 현 교수는 “천안함 폭침 사건 발발 약 1년 뒤인 2011년 5월 남북 물밑협상에서 북한이 폭침에 사과한다는 논의가 타결 직전까지 갔었으나 막판에 무산됐다”는 비화를 최초로 공개했다.
“금강산에서 박왕자 씨의 피살 뒤 남북관계가 급랭했다. 북한은 2009년 8월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자 조문으로 남북관계의 돌파구를 찾고자 했다. 김기남 당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통전부) 부장을 1시간 40분 정도 만났다. 내가 앞으로 핵 문제를 테이블에 올리는 바탕 아래서 어떤 대화든 할 수 있고, 결과에 따라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당시 우리가 제시한 ‘비핵개방3000’은 비핵화하면 10년 안에 북한의 국민소득을 3000달러로 끌어올린다는 원대한 계획이었다. 끝나고 나오는데 김양건이 문 밖에서 귓속말로 ‘비핵개방3000 정책을 믿어도 됩니까’라고 묻더라. 그래서 ‘믿으세요. 믿고 시행하면 그대로 합니다’라고 답했다. 공식적으로는 우리를 비난했지만 여전히 우리의 진심을 파악하고 싶었던 거다.”
―이명박 정부 때 남북 정상회담이 없었다.
“정상들이 그저 만나는 것만으로 무슨 의미가 있나. 김 전 대통령을 조문하고 돌아간 뒤 물밑 접촉이 있었지만 성사가 안 됐다. 우리는 ‘대북 지원 할 수 있다. 그러나 핵 문제 해결 노력에 진전을 보여야 국민들이 납득할 수 있다’고 했고 김양건은 ‘그건 내가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정상 두 분이 만나면 뭔가 얘기가 나오지 않겠나’라고 했다. 정상회담을 하려면 최소한 의제 정도는 정리가 돼야 한다. 마지막까지 고민했지만 북측이 비핵화 의지가 없다고 판단했다. 이명박 정부 당시 정상회담은 북한이 원했지만 비핵화 결단을 못 해 안 이뤄진 것이다.”
―‘비핵개방3000’은 대북 압박 정책이라고 비난받았다.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사건은 왜 벌어졌다고 보는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스트로크(stroke·뇌졸중) 후유증을 오래 겪었다. 김정일이 와병 뒤 승계를 염두에 두고 군부에 권력을 집중시킨 상황에서 군부가 모험적인 행동을 벌인 것이다. 김정일이 한동안 100% 이성적인, 북한 입장에서는 전략적인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본다. 2011년 말 숨질 때까지 북한은 중요 순간마다 결정을 못 했다. 북한은 비핵화에 대한 얘기는 없이 쌀 비료 등 어마어마한 지원을 요구했다. 자기들 요구를 안 들어주자 천안함 폭침을 일으킨 것으로 본다.”
현 교수는 그로부터 약 1년 뒤인 2011년 5월 남북 물밑 협상에서 북한이 폭침에 사과한다는 논의가 타결 직전까지 갔었다고 말했다.
―어떻게 됐던 건가.
현 전 장관에 따르면 당시 협상은 사과 수위를 놓고 북측 대표들이 “여기까지는 사과하겠다”고 했고 우리 측은 “더 해야 한다”고 하는 수준까지 나아갔다고 한다. 현 전 장관은 “북측은 폭침을 인정하는 일이라 굉장히 신중했고 우리 측은 1996년 강릉 잠수함 침투사건의 유감 표명보다 더 나아가, 주체를 명확히 밝히는 사과를 요구했다”고 말했다.
협상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중국 방문 도중 급거 귀국하면서 깨졌다. 현 전 장관은 “김정일이 이틀가량 남았던 방중 일정을 전격 취소하고 돌아온 뒤 바로 회의를 소집해 남북 물밑 협상을 깼다”며 “폭침을 인정하면 향후 남북관계에서 북한의 입지가 너무 좁아진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고 말했다. 북한은 2011년 6월 우리 정부가 정상회담 전제 조건으로 천안함 유감 표명을 해 달라고 매달렸고 북한 대표에게 돈봉투를 내놓았다고 주장했다. 현 전 장관은 “북측이 판을 깨려고 엉뚱한 얘기를 들고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평도 포격 도발은….
“2010년 8월쯤 해서 북과 물밑 대화를 다시 시작했고 그해 11월 25일 남북 적십자회담을 열기로 10월쯤 합의를 했다. 한데 회담 이틀 전인 23일 연평도를 포격했다. 굉장히 이례적이다. 북한 권력의 정책 결정에 상당한 난맥이 있었던 것이다. 나중에 밝혀지겠지만 나는 통전부 쪽에서는 대화로 남북관계를 변화시키고자 했고, 군부는 이를 반대하는 강력한 흐름이 있었다고 본다. 김정일이 왔다 갔다 했을 거다. 대화에 손들어줬다가 연평도 포격도 손을 들어줬던 거 아니겠나.”
―진보 정부의 외교정책을 평가한다면….
“햇볕정책은 의도는 나쁘지 않았지만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의지가 부족했다. 현 정부는 너무 북한에만 초점을 맞추고 그를 중심으로 문제를 풀려는 경향이 강하다. 한데 북한의 의도나 전략적 사고를 잘못 인식하면서 여러 가지가 꼬여 외교 안보면에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 같다.”
―잇따른 남북미 정상회담에도 진척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이 애초에 완전한 비핵화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북한의 전략적 오판이다. ‘핵무력’을 완성했다고 북한이 국제정치의 판을 흔들고 살길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 핵은 어차피 쓸 수도 없다. 위협은 할 수 있지만 이제 위협으로는 문제 해결이 안 된다. 우리 입장에서도 완전한 비핵화 없이, 북핵이라는 불씨를 지닌 어정쩡한 상태로 한반도에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건 환상에 불과하다.”
―명·청 교체기의 조선보다 지정학적 조건은 오늘날 한국이 나쁜 것 같다.
“한국은 헤게모니 경쟁이 벌어지는 가운데 놓여 있는 ‘변방국’이다. 그나마 국력은 조선 때보다 탄탄하다. 세계 일류 기업도 있고, 경제 규모도 세계 10위권이어서 강대국들이 훅 불면 없어질 정도는 아니다. 군사·경제적으로 상대가 우리를 타격했을 때 똑같은 정도로 비례 타격은 못하더라도, 반격(bounce back)이 가능한 정도까지는 국력을 키워야 한다.”
조종엽 기자 jjj@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