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준호 감독 ‘기생충’ 美 골든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
봉준호 감독(가운데)이 5일(현지 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영화 ‘기생충’으로 외국어영화상을 수상한 뒤 배우 이정은(왼쪽) 송강호와 함께 트로피를 잡고 있다. 이날 시상식에는 조여정 등이 함께했다. 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봉 감독은 “자막의 장벽, 장벽도 아니다. 1인치 정도 되는 장벽을 뛰어넘으면 여러분이 훨씬 더 많은 영화를 만날 수 있다”는 수상 소감을 밝혔지만 세계 영화산업의 심장부 할리우드는 유독 자막을 읽어야 하는 외국어 영화에 대한 관객의 심리적 장벽이 높은 곳이다.
그러나 ‘기생충’은 이미 ‘1인치’의 장벽을 뛰어넘어 지난해 10월 북미에서 개봉한 이후 상영하는 곳마다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냈다. ‘기생충’은 북미에서만 2390만 달러(약 280억 원), 세계적으로는 1억2974만 달러(약 1518억 원)를 벌어들였다. 이는 지난해 북미에서 개봉한 외국어 영화 중 가장 큰 규모다. 극 중에서 기정(박소담)이 ‘독도는 우리 땅’을 개사해 부른 노래가 ‘제시카 징글(Jessica Jingle)’로 북미 관객들 사이에서 아카데미 주제가상으로 꼽히는가 하면 할리우드의 대표 배우 브래드 피트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도 골든글로브를 앞두고 열린 ‘기생충’ 파티에 참석해 봉 감독과 송강호에게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은 ‘2019년의 영화’로 꼽기도 했다.
‘기생충’은 상업적 성공과 더불어 북미 평단의 찬사를 받으며 골든글로브 수상에 대한 기대감을 키웠다. 4일 열린 전미비평가협회 최고상인 작품상과 각본상을 비롯해 시카고, 뉴욕, 로스앤젤레스 등 미국 주요 비평가협회 상을 휩쓸며 전 세계에서 약 50개의 트로피를 안았다. 시상식을 앞두고 쏟아진 예측 기사에서도 외신은 골든글로브의 외국어영화상 부문은 ‘기생충’의 몫이라고 평가했다.
봉 감독은 골든글로브 수상 직후 가진 질의응답에서 미국 관객들이 ‘기생충’과 사랑에 빠진 이유를 묻는 질문에 “이 영화는 가난한 자와 부자, 자본주의에 관한 이야기로 미국이야말로 자본주의의 심장과 같은 곳이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할리우드를 취재하는 외신기자들이 수여하는 골든글로브와 달리 아카데미상은 배우와 감독 등 영화 제작에 직접 관여하는 8000여 명의 미국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 회원의 투표로 결정된다. 이 때문에 회원의 일부가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진 미국감독조합과 미국배우조합이 수여하는 상이 아카데미 수상의 가늠자가 되는데 ‘기생충’은 미국배우조합의 작품상 격인 캐스팅상 후보에 올라 있다. 뉴욕타임스를 비롯한 외신들이 아카데미 작품상을 따낼 첫 외국어 영화로 ‘기생충’을 언급하는 이유다. ‘기생충’은 아카데미 국제영화상(옛 외국어영화상)과 주제가상 등 2개 부문에 예비 후보로 선정됐으며 13일 작품상과 감독상 등 전체 후보가 발표된다.
이서현 baltika7@donga.com·김재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