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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기 연주자’ 박지하, 런던 심포니 ‘홈구장’ 英 바비칸 센터서 콘서트

입력 | 2020-01-07 16:37:00


국악기 연주자 박지하(35)가 영국 바비칸 센터 초청으로 31일 런던에서 콘서트를 연다. 바비칸 센터는 유럽이 자랑하는 세계적 문화 기관. 박 씨가 공연할 세인트 루크 교회는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연습, 공연, 녹음을 하는 ‘홈구장’이다. 한국 음악계에도 이례적 경사다.

서울 마포구에서 2일 만난 박 씨는 “바비칸의 프로그래머가 BBC 등 현지 라디오에서 제 음악을 듣고 지난해 연락을 해왔다. 런던 심포니의 공간에서 공연을 하게 돼 신기하고 기쁘다”고 했다. 바비칸이 직접 기획한 컨템퍼러리 뮤직 시리즈의 일환이다. 폴란드 음악가 와코우 짐펠과 박 씨가 1, 2부로 나눠 무대에 선다.

피리, 생황, 양금을 자유자재로 오가며 직접 작곡한 음악을 연주하는 박 씨는 2016년과 2018년 발표한 두 장의 솔로 앨범으로 해외 매체의 극찬을 받았다. 영국의 가디언과 BBC, 미국의 피치포크와 스핀 등 유수 매체가 박 씨의 음악세계를 상찬하며 ‘올해의 음반’ 목록에 등재했다.

“피리와 생황은 개량이 거의 안돼 원시적 모습을 간직한 악기예요. 그런데도 해외에서 전자음악의 분위기나 미래적 느낌이 난다고 하는 평을 들으면 흥미롭습니다.”

박 씨의 음악 인생은 초등학교 때 플루트를 배우며 시작했다. 국악중학교에 진학해 피리를 잡았다. 생황은 한국예술종합학교에 들어가 부전공으로 익혔다. 현을 두드려 소리 내는 양금은 독학했다.

“‘Philos(필로스)’는 에로스, 아가페와 다른 사랑이죠. 저에게는 소리와 시간에 대한 사랑이에요. 반복과 집중이 제가 그 사랑에 다가가는 방식입니다.”

박 씨의 작곡법은 일견 단순하다. 순간적으로 떠오른 이미지에 기반해 하나의 악기로 즉흥 멜로디를 만든다. 녹음한 뒤 여러 번 반복해 듣는다. 명상에 비견할 작업.

“어떤 녹음 구간을 엄청나게 집중해 반복적으로 듣다보면 신기하게도 거기에는 없는 다른 소리가 들리기 시작해요.”

그때 다른 악기를 들고 소리를 쌓아올린다. 악보는 필요 없다. 그렇게 만든 2집 수록곡 ‘Thunder Shower’는 듣는 이를 30초 만에 빨아올려 다른 세계로 끌고 간다. 아름다운 분산화음으로 시작해 거칠게 몰아가는 양금 타현(打絃)은 마치 빛의 효과를 중시해 윤곽선을 흐리게 하고 안료를 중첩시켜 몽롱한 효과를 낸 영국 화가 윌리엄 터너(1775~1851)의 붓질 같다. 회청색 하늘이 통째로 쏟아져 별빛으로 퍼지는 듯한 소리 풍경. 실제 비와 천둥소리를 섞었다. 박 씨는 소음과 음악이 만나는 양상에 관심이 많다.

“강서구 염창동에서 녹음한 ‘Walker: In Seoul’이란 곡에서는 연주하는 동안 실외에 마이크를 설치했어요. 지나가는 오토바이와 버스 소리를 실시간으로 함께 담았죠. 현장음, 전자음악, 피아니즘의 경계를 흐리는 독일 음악가 닐스 프람을 좋아합니다.”

박 씨의 2020년은 비와 천둥처럼 내려칠 듯하다. 호주 멜번의 아시아 토파 페스티벌(2월), 독일 몬하임 트리엔날레(7월)에 초청받았다. 가까이는 11일 서울 중구 문화공간 ‘피크닉’의 ‘사일런트 필름 & 라이브’ 무대에 선다. 독일 영화 거장 F.W. 무르나우 감독의 무성영화 ‘선라이즈’에 자신이 만든 새 음악을 덧댄다.

“저도 제 음악 장르가 뭔지 모르겠어요. 국악 퓨전, 월드뮤직이라는 틀은 이제 전혀 어울리지 않죠. 미니멀하며 실험적인 현대음악이라고 하면 설명이 될까요. 그저 아름다운 소리를 계속해서 찾아가고 싶습니다.”

※와코우 짐펠: Waclaw Zimpel

임희윤 기자 i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