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년경 세워진 로마의 콜로세움. 세계적인 대제국을 이룬 로마에서 검투사들이 대결을 펼치던 원형 경기장이다. 동아일보DB
로마의 법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중요 화두인 낙태, 여성 차별, 독신, 동성애, 일조권 등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습니다. 오늘은 한동일 씨의 저서 ‘로마법 수업’을 토대로 로마의 법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 신분 차별의 문제
로마제국의 신분은 크게 자유인과 노예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자유인은 날 때부터 자유인인 ‘잉게누스’와 노예 신분을 벗어난 ‘리베르투스’로 나뉩니다. 잉게누스는 조상에게 유산을 물려받을 수 있었고, 민회의 투표권과 국가 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대신 병역과 납세의 의무도 져야 했죠. 반면, 리베르투스는 국가 기관에서 일할 수 있는 권리, 민회에 참여할 수 있는 권리와 투표권 등이 없었고 병역의 의무도 지지 않았습니다.
자유인과 노예의 구별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로마에는 세네카와 키케로와 같은 위대한 사상가들이 있었습니다. 세네카는 “노예들이다. 그렇더라도 인간이다”라고 말했고, 키케로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라고 외쳤습니다. 초기 기독교 교회는 노예에게 종교의 자유를 허락하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노예 해방의 형식과 절차도 간소화됐습니다. 자유인 중 약 80%가 해방 노예 출신이라는 기록이 존재할 정도로 노예가 줄어들었습니다. 로마 사회는 신분 상승의 통로를 점점 넓혔고, 이를 통해 다양한 사회 구성원들이 새롭게 로마 사회에 충원될 수 있었습니다.
마르쿠스 툴리우스 키케로는 기원전 100년경 활동한 로마의집정관이다. 그는 “우리가 인간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며노예에 대한 친절을 강조했다. 동아일보DB
○ 남녀 차별의 문제
로마는 자유인과 노예의 구별만큼 남녀 차별이 확고한 사회였습니다. 여성은 공적인 시민의 생활에 일절 참여할 수 없었고 남편의 지배 아래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로마의 결혼과 이혼·낙태 등에 관한 법률을 살펴보면 여성의 지위가 마냥 열악하다고만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로마는 많은 시민들이 결혼하고 자녀를 낳도록 장려하기도 했습니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이나 자녀가 없는 가정에 불이익을 주고, 재혼을 독려했습니다. 로마 초기에는 낙태를 금지하지 않았지만, 스토아 철학과 기독교가 전파되면서 법적으로 금지되기 시작합니다. 낙태 문제와 더불어 생명의 시작을 언제부터로 해야 하는가에 대한 논쟁도 뜨거웠습니다. 로마 시대에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학설을 바탕으로 생명의 시작을 보통 수정 후 6주로 규정했습니다. 6주를 전후해 태아에 이성과 영혼이 들어간다고 생각한 거죠.
로마 시대의 많은 지식인은 여성을 보호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로마법에는 “여성들이 필요할 때 도우러 가야 한다”는 조항이나 “여성에게 약을 먹이고 추행한 자는 공동체에서 영구 추방한다”는 원칙이 있었습니다.
로마 시대의 결혼과 이혼, 자녀 문제 등을 살펴보면 오늘날 사회와 매우 비슷합니다. 최근 우리 사회는 여성이 활발하게 사회에 진출하며 남녀평등도 점차 실현되고 있죠.
하지만 여전히 여성들은 결혼과 이혼, 독신, 낙태, 승진 등에서 약자의 위치에 있습니다. 일부 남성들은 ‘여성 혐오’를 부추기는 경우도 있습니다. 로마 시대처럼 남녀문제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필요해 보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와 사회도 마찬가지입니다. 로마가 하루아침에 이뤄지지 않았듯이, 현대 사회의 모든 법과 제도 역시 끊임없이 변화하며 발전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환병 서울 용산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