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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과 놀자!/피플 in 뉴스]기대와 우려 속 ‘18세 유권자’ 탄생

입력 | 2020-01-08 03:00:00


프랑스의 부르주아들은 1789년 시민혁명으로 선거권을 쟁취했습니다. 영국의 노동자들은 19세기 차티스트 운동을 통해 참정권을 갖게 됐죠. 에밀리 데이비슨은 달리는 영국 국왕의 말을 향해 몸을 던져 자결하면서 여성 참정권을 얻어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문명국가의 모든 국민이 갖는 헌법상 권리인 선거권은 역사적으로 당사자들의 기나긴 투쟁으로 얻어졌습니다.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지난해 12월 국회를 통과했습니다. 4월 15일 실시되는 총선부터 선거 연령은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습니다. 우리나라 현행법상 만 18세는 혼인, 군 입대, 운전면허 취득이 가능한 나이입니다. 만 15세가 되면 부모 동의하에 취업이 가능하고, 만 17세에는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며 효력 있는 유언도 남길 수 있습니다.

만 18세 선거권은 1997년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 공약으로 처음 내세운 지 23년 만에 실현됐습니다. 이보다 이른 1992년 대선 선거 운동 과정에서 청소년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선거권을 만 16세까지 확대하라”는 주장이 제기된 적도 있었죠. 2004년에는 수천 명의 청소년이 ‘만 18세 선거 연령 확대 입법청원’을 내기도 했습니다. 2005년에는 선거 연령이 만 20세에서 만 19세로 내려가는 성과도 있었습니다.

정부 통계에 따르면 이번에 새로 투표권을 갖게 된 이들은 약 50만 명입니다. 이 중에는 2002년 4월 16일 이전에 태어난 고3(만 17세) 학생도 5만 명이나 됩니다. 한 교실 안에 투표권이 있는 학생과 없는 학생이 섞여 있게 되는 셈입니다. 같은 교실에서 수업을 듣는 학생 중 일부가 선거 운동을 하는 건 가능하지만 생일이 늦은 친구가 함께 선거 운동을 하면 불법입니다.

이에 따라 우리 사회에서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청소년이 정치 참여의 주체로 거듭날 것이란 기대와 함께 교실에 불게 될 정치 바람을 우려하는 시각이 공존하는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은 선거 연령 확대를 적극 환영한다는 입장입니다. 청년 인재 영입, 청년세 신설, 청년 신도시 등을 논의하면서 당장 눈앞에 다가온 총선을 대비하고 있습니다. 정의당은 선거 연령을 만 16세까지 더 낮춰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청소년 단체들은 앞으로도 피선거권 연령 확대 등 청소년 참정권을 확대하기 위한 여러 제도가 시행돼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피선거권 연령은 대통령 만 40세,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지방자치단체장은 만 25세입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고등학교 3학년 학생들에게 투표권이 생기면 학교 현장이 정치색으로 물들 것이란 우려를 제기합니다. 만 18세 학생에 대한 선거 교육도 간단치 않습니다. 선거권이 있는 학생들만 따로 모아서 교육해야 할지 고등학교 학생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할지도 아직 명확히 정해지지 않은 상황이죠.

선거 연령 확대는 필요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 회원국 중 선거권이 만 19세인 유일한 국가였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성급하게 정책을 시행해선 안 되겠죠. 교육부와 17개 시도 교육청의 확실한 가이드라인 마련이 절실해 보입니다.

다가올 4월 15일, 새 유권자의 표심이 어디로 향할지 정치권뿐 아니라 모든 국민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만 18세 유권자가 꿈꾸는 세상이 숭고한 투표권 행사로 실현되길 바랍니다.

박인호 용인한국외대부고 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