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가장 빠른 새해, 97년 첫 해가 뜬다’는 제목의 사진. 홍석희 전 동아일보 사진부 기자가 남태평양 피지의 라키라키에서 오메가(Ω) 모양의 일출을 찍었다. 동아일보DB
장승윤 사진부 차장
사진기자는 연말이면 전 세계에서 전송된 새해 사진을 본다. 뉴욕 타임스스퀘어나 파리 개선문 같은 랜드마크에서 카운트다운을 외치고 새해 0시에 폭죽을 터뜨리며 환호하는 모습이 전부다.
외국 사진과 비교하면 한국의 ‘해맞이’ 사진은 독특하다. 해를 보기 위해 심야에 출발하는 열차가 있고, 대통령 또한 새해 첫 공식 일정으로 해맞이 산행을 한다. 공군 특수비행팀 블랙이글스는 해 뜨는 시간에 맞춰 ‘새해 축하 비행’까지 한다. 혹자는 지자체의 해맞이 소원 마케팅이 빚어낸 요란뻑적지근한 하루짜리 행사쯤으로 얘기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의 해 사랑은 1월 1일에만 그치지 않는다. 명소라 불리는 곳은 사계절 내내 일출을 보기 위한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면 한국인의 마음속에는 ‘일출’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
태양을 찍기 위해 해외 출장을 갔던 사례도 있다. 지금은 은퇴한 동아일보 사진부 선배는 1990년대 말 지구상에서 가장 빨리 뜨는 해를 찍기 위해 날짜변경선에서 가장 가까운 남태평양 피지로 출장을 갔다. 여름 바다는 덥고 습해 오메가를 담을 때까지 찍다 보니 출장 기간이 한 달이나 걸렸다. 출장지를 감안하면 얼핏 부럽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길어지는 출장에 압박감도 비례했을 것이다.
‘오메가’가 바다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면 ‘백두산 일출’은 우주의 기운을 모아야 성공할 수 있다. 목욕재개를 하고 조상님을 향해 큰절하고 올라가도 백두산 일출은 찍기 어렵다. 몇 년 전부터 급변한 남북관계에 백두산에서 해 뜨는 사진을 신문사들이 경쟁적으로 취재했는데 영하의 추운 날씨에 비바크를 허락하지 않는 백두산에서 불법을 감행하고 기다린다 해도 정상의 날씨는 예측하기 어렵다. 그래서 ‘백두산 일출은 100번 올라가야 두 번 본다’는 말도 생겼다. 국토의 70%가 산인 한국에는 지리산, 설악산, 한라산, 바다와 함께 있는 한려해상까지 명산이 즐비하여 산 정상에서 보는 일출의 맛이 제각각 다르다. 여기에 삼면의 바다까지 포함하면 전 국토가 해맞이 장소인 셈이다.
일출 사진은 이제 전문가들만의 영역은 아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태양을 향해 두 손을 모아 소원을 빌었다면 이제는 스마트폰을 들고 순간을 기다린다.
드디어 새해 첫 해가 뜬다. “우아!” 감탄의 소리와 함께 모두 다 스마트폰을 꺼내 사진을 찍는다. 옆에 있는 사람이 어디에서 왔는지 모른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이 있을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대체 얼마나 많은 해 사진이 올라가 있을까? 한날한시 모르는 사람이 모여 같은 행동을 하는 것이 플래시몹이라면 한국의 해맞이는 기네스북에 오를 만큼 규모가 큰 플래시몹일 것이다. 우리는 왜 일출 사진을 많이 찍는지 아직 해답을 찾지 못했다. 그래도 확실한 사실 하나. 전 세계가 잠들어 있을 때 한국은 깨어 있다.
장승윤 사진부 차장 tomato99@donga.com